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강제’ 의혹 짙어지는 북송 논란, 철저히 파헤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부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 2명을 강제로 북송했다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우리 헌법의 기본 가치와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인륜을 거스른 중대 범죄다.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로 집권한 현 정부의 도덕성에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귀순 뜻 밝혔는데도 넘겼을 개연성 확대 #사실이면 중대 범죄…국회, 조사 나서야

“북 주민들이 죽더라도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국회 발언부터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가 “북 주민들이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했다”고 밝혔고, 군 당국도 “북 주민들이 우리 해군의 퇴거 작전에 저항하며 일관되게 남쪽으로 향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상 북한 주민은 북한 땅에 있어도 우리 국민이다. 하물며 우리 영토에 들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다면 정부는 마땅히 ‘국민’인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범죄 혐의가 있어도 우리 사법당국의 수사·재판을 통해 조치하는 것이 법에 정해진 절차다. 게다가 20대 초반 젊은이 2명이 좁은 목선에서 선원 16명을 살해할 수 있었겠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죄 추정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며 “북에 가면 죽는다”고 애걸했을 국민 2명을 쫓기듯 넘겨줬다. 제3세계 후진국도 자국민에게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북한의 실상에 대해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유엔 북한인권조사회(COI)의 2014년 보고에 따르면 강제북송된 탈북자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악랄한 고문을 당한다. “코를 뚫어 고리를 끼우거나 피를 흘리도록 얻어맞고, 여성은 성폭행당하기 일쑤다. 아이를 밴 여성은 마취 없이 도구를 사용하거나 골반을 때려 강제로 낙태시킨다. 출산한 아이는 산모 보는 앞에서 살해당한다.”

이런 참상을 충분히 알고 있을 정부가 북송을 강행했다면 국제사회 역시 가만 있을 리 없다. 토마스 킨타니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해당 정부’와 접촉하고 ‘추후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정부의 북송 조치는 고문방지협약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때마침 북한에 장기 억류됐다가 송환 엿새 만에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22일 서울에서 열릴 납북 피해자 결의대회 참석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원했지만 청와대가 거절한 것도 구설을 낳고 있다.

전대미문의 탈북자 북송은 공동경비구역의 한 중령이 청와대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직보한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탄로났다. 통일부와 국정원 모두 소극적이었던 북송을 청와대가 왜 국방장관마저 배제하고 일사천리로 처리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국회는 즉각 관련자 전원을 청문회에 출석시켜 진상 조사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