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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추방, 왜 헌법 3조만 보나”…대법 판례 흔드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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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지난 7일 살인 혐의를 받던 북한 주민 2명을 강제 송환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헌법 3조만 이야기한다면 많은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 3조 따르면 국민 범주 속해 #정부 ‘통일을 지향’ 헌법 4조 언급 #송환 논란에 북한 실체 인정 주장 #법조계 “북한 주민과 연결은 무리”

이 고위 당국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주민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헌법 3조와 4조를 대체로 균형 있게 접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관계의 법적인 성격에 대해 가장 중요한 근거는 남북기본합의서 1조(남북 간 상대방 체제 인정)에 나와 있고,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면서다.

해석 논란 불거진 헌법 조문

해석 논란 불거진 헌법 조문

헌법 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즉 북한 주민들도 헌법 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범주에 속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한반도를 규정하는 법적 근간이자 상징적 원칙이 헌법 3조였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탈주민을 수용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헌법 4조를 언급한 건 헌법 3조의 무조건적인 적용이 쉽지 않다는 취지다. 대신 헌법 4조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문구를 들어 통일의 상대인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남북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관계에서 헌법 3조와 4조는 동시에 고려해 왔다. 남북관계라는 건 늘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앞의 한쪽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당국자의 설명이 그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다르다는 반박이 나온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과 교수는 “대법원과 헌재는 헌법 4조를 감안하더라도 북한이탈주민의 법적 지위에 대해 헌법 3조의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기본합의서 역시 신사협정에 불과하며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대법원은 판시하고 있다”며 “이를 남북관계의 법적 근거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 변호사는 “헌법 3조는 국적법·국가보안법의 근거 조항이고, 4조는 남북관계발전법·남북교류협력법 등의 근거 조항”이라며 “4조는 그야말로 남북 간 경제협력, 사회교류 등을 해야 하는 현실적 환경을 감안한 건데, 헌법 4조를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 근거에 연결시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주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 당국자가 그간 대법원 판례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게 맞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남북관계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은 우리 국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건 헌법정신엔 맞지만, 현실은 국가 대 국가로 관계를 유지해 온 게 그동안의 남북관계”라며 “이걸 송두리째 부정하고 우리가 관할권만 행사하는 건 곤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추방 결정이 국내외에서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법적, 도덕적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한 국가안보적 차원의 결정을 했다”고 추방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향후 국가안보적 판단으로 포장한 자의적 결정이 있을 경우 이를 막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헌법 4조’ 발언까지 등장하며 남북관계의 헌법적 인식이 헝클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변호사는 “정부가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며 “5일 만에 보낸 건 정부 결정의 옳고 틀림을 떠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라고 짚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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