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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자율차 뒹구는 낙엽에도 끽~지하차도선 벽에 부딪힐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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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지하차도를 빠져나오자, 핸들이 양 옆으로 크게 돌아가는 모습이 위 모니터를 통해 보인다. 손을 놓고 있던 운전자가 급히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임성빈 기자

자율주행 자동차가 지하차도를 빠져나오자, 핸들이 양 옆으로 크게 돌아가는 모습이 위 모니터를 통해 보인다. 손을 놓고 있던 운전자가 급히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임성빈 기자

‘부웅~~~’
엔진 소리가 들리자 버스 안 승객은 “와아”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매일같이 타는 자동차가 출발하는데 승객이 놀란 이유는, 그 차의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도, 액셀러레이터를 밟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자율주행 규제특구서 직접 타보니 #작은 물체도 장애물 인식해 제동 #지하차도 들어가자 GPS 먹통 #아직은 사람 도움 필요한 수준 #신호체계와 연동 등 연구 한창

12일 오후 세종시 규제자유특구에서 체험한 자율주행 자동차 이야기입니다. 세종시는 현재 제1차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자율주행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사업만을 위해 규제를 풀어낸 지역은 세계에서 세종시가 유일합니다. 지난 7월 이후 4개월여 동안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달려온 세종시에서 직접 자율주행 버스를 타봤습니다.

자율주행차, 아직은 긴장하며 타야 하는 수준

 총 7.7km를 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체험한 자율주행차는 완전히 안심하고 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현대차의 미니버스 쏠라티에 자율주행을 위한 여러 장치를 달아 개조한 차량이었는데, 아직 사람이 없이는 운행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지하차도에 들어갈 때 좀 놀랐습니다. 지하차도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운전대가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렸지요. 지하차도 옆 벽면에 부딪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차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GPS(위성항법장치) 때문입니다. 지하차도를 지나는 동안 위성에서 수신하는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운전대를 ‘오퍼레이터(운전자)’가 직접 붙들어야 했습니다.

 자율주행차, 오래 타면 멀미도 좀 나겠더군요. 이날 주행한 곳은 세종시 산학연클러스터센터부터 합강교차로를 지나 다시 산학연클러스터센터로 돌아오는 왕복 7.7km의 버스전용도로(BRT) 구간입니다. 이곳은 아직 교통 수요가 많지 않아 다른 버스는 다니지 않습니다. 지금은 오직 자율주행차 시험 운영을 위해 비워진 도로입니다. 그런데도 자율주행차는 중간중간 이유 모르게 갑자기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날 동행한 자율주행 업체 엠디이(MDE)의 윤경민 이사는 “차량에 장착한 센서가 종종 ‘고스트(Ghost)’를 인식해 멈추려 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자율주행차에 달린 레이더(Radar)와 라이더(Ridar) 센서 등은 종종 낙엽 같은 이물질을 인식하기도 한다는 거지요.

세종시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자율주행 버스. 자율주행 업체 엠디이(MDE)의 윤경문 이사(사진 왼쪽)가 차량 앞에 달린 센서 장비를 가리키고 있다. 임성빈 기자

세종시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자율주행 버스. 자율주행 업체 엠디이(MDE)의 윤경문 이사(사진 왼쪽)가 차량 앞에 달린 센서 장비를 가리키고 있다. 임성빈 기자

 별다른 이상이나 사고 없이 시승을 마쳤지만, 천천히 달리는 자율주행차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시승차는 안전을 위해서 시속 20~50km로 달렸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안정화되면, 세종시는 일반 시민도 자율주행 버스를 탈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세종시의 ‘아직 불안한’ 자율주행차 실증 사업은 어떻게 속도를 내 왔는지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왜 세종시에서는 자율주행차를 탈 수 있나.

 지난 7월 정부는 세종시를 비롯한 전국 7개 지역·사업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습니다. 규제자유특구는 기업이 규제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신기술을 개발하고, 사업 진출에 도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유예·면제하는 특별 구역입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해 기업 이전을 유도하고, 지방의 새로운 고용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세종시는 자율주행 실증사업을 위한 규제특구로 지정돼 7개의 규제 특례를 받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버스가 12일 세종시 한누리대로 BRT노선을 자율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율주행 버스가 12일 세종시 한누리대로 BRT노선을 자율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자율주행차 사업이 어려웠던 이유는.

 이날 체험한 자율주행 차량은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은 가능하지만, 긴급 상황 등을 대비해 운전자가 있어야 하는 ‘레벨 3’ 수준입니다. 여전히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을 여러 규제가 막고 있습니다.
 우선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려면 자율주행 시스템 자체의 무인 운영 능력도 중요하지만, 자동차가 도로·신호 체계 등과 정보를 잘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도로 곳곳에 자율주행을 위한 인프라를 설치할 수 있어야 하죠. 또 차 안의 영상장치(블랙박스 등)로 수집한 영상 자료를 데이터센터 등과 공유하며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도 필수입니다.
 이런 행위는 그동안 법으로 금지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시의 규제자유특구는 이러한 규제로부터 제외입니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 2년 동안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며, 2년이 지나면 결과 평가를 통해 연장·확대·해제 등이 결정됩니다. 규제자유특구는 한번 연장할 수 있어 최대 4년 동안 규제자유특구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특구 기간에 규제 관련 법이 개정되면 해당 규제는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12일 세종시 규제자유특구에서 자율주행 업체 엠디이(MDE) 윤경민 이사가 차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성빈 기자

12일 세종시 규제자유특구에서 자율주행 업체 엠디이(MDE) 윤경민 이사가 차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성빈 기자

자율주행 규제자유특구에 남겨진 과제는?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풀었지만, 반발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권영석 세종시 경제정책과장은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문제처럼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도 기존 산업과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버스 기사는 자율주행차 오퍼레이터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종시는 내년 하반기에 일반 시민이 자율주행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일반 버스 시간표에 자율주행 버스를 포함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규제자유특구를 통한 정부 지원에 대해 윤경민 엠디이 이사는 “재정적 지원이 중소기업에는 새로운 혈액을 공급받는 것 같았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기대하는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을 실현하려면 여전히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미국 기업의 ‘조’ 단위 자본력과 비교했을 때, 100억원 단위의 국내 업체 지원금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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