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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경제 운용 10년 전처럼 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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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09년 12월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우리 경제 현 좌표 및 향후과제에 대한 민관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국무총리, 경제 부처 장관, 연구기관장, 기업인을 포함하여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국제기구에서도 참석하였다. 필자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수석경제학자 자격으로 참석하여 ‘2010년 경제전망과 정책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당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최선의 정책이 무엇인지, 재정확대를 계속하되 중기 재정건전성은 어떻게 유지할지, 갑작스러운 외화자금의 유출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할지를 논의했다.

임기 반환점에서 경제 살리려면 #2009년 세계경제위기 대응했던 #리더십과 정책을 타산지석 삼아 #경제정책 운용을 전면 전환해야

당시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한 성공 사례로 손꼽혔다. 2008년 12월에 미 연준과 2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일본, 중국과도 기존의 통화 스와프 규모를 확대하여 위기 확산을 막았다. 2009년에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 1회씩 총 40차례 개최하여 정책을 신속히 결정하고 성과를 점검했다. 그날 회의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 해는 일자리를 늘리면서 고용의 질을 높이고 민생을 안정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종일 자리를 지키면서 경청했다. 정치 지도자와 정책 담당자들은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서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최악의 대외여건에서 경제를 안정시켰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에 두 번째로 높았다. 2010년에 32만 명의 일자리가 늘었고 소득분배도 개선됐다. 한국은 2010년 G20 의장국으로 선정되어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집권 3년 차인 2010년 2분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한국갤럽의 직무수행평가)은 49%로 임기 반환점의 지지율로는 역대 정부 중에서 최고였다. 4년차 초반까지 지지율이 40% 이상을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주에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대통령 지지율은 45%로 역대 2위로 높았다. ‘국정농단’사건을 발판으로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인 84%로 출발해서 남북화해에 대한 기대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경제, 민생 문제 해결 부족과 인사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분야 국정 목표를 ‘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로 세웠지만, 성장이 잘 되지 않으니 분배 개선도 쉽지 않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에 최저이고 소득5분위 배율(하위 20% 대비 상위 20%의 소득 비율)은 지난 3년간 계속 높아졌다. 경제 상황 악화에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응했다. 사회안전망 강화는 필요하지만, 선심성 사회복지지출이 너무 빠르게 늘었다. 재정적자가 커지고 정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은 상승하고 있다. 고용 악화로 임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주가 되면서 시급한 구조개혁은 뒤로 밀렸다. 주력 제조업의 쇠퇴, 영세 자영업의 부진에 대응이 미흡했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고 불필요한 규제와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혁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3대 경제전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이미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경기 하강기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줄였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과 인프라 조성은 미흡하고 신산업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경제를 위해 많은 조치가 있었지만, 대기업의 부당행위와 과도한 시장지배력을 효율적으로 규제하여 대기업,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도 상생 협력하는 기업생태계의 조성은 갈 길이 멀다. 사회 양극화는 여전하고 모든 개인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계층 간 이동성을 높이고 중산층을 늘려서 성장·분배의 선순환을 가져오는 ‘포용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임기 후반기의 경제 운용계획을 새로 세워야 할 시점이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경제정책 운용을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내외 경제전문가와 만나 의견을 경청해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책을 고민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부작용이 많은 정책은 과감히 폐기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키우며 민간 경제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을 추려서 중점과제로 실행하고 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역량 있는 전문가를 경제정책 책임자로 두어 국내외로 신뢰감을 주고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옳다. 거시경제 운용을 잘 알고 구조개혁에 신념을 가진 좋은 경제참모들을 옆에 두고 수시로 조언을 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심기일전해 새로운 경제 운용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