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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오디션 10년 신화…‘프듀’ 불공정 논란에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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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16년 시작해 ‘국민 프로듀서’와 ‘센터 경쟁’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프로듀스’ 시리즈는 제작진의 투표 조작 혐의가 드러나면서 네 시즌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사진 Mnet]

2016년 시작해 ‘국민 프로듀서’와 ‘센터 경쟁’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프로듀스’ 시리즈는 제작진의 투표 조작 혐의가 드러나면서 네 시즌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사진 Mnet]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인가. 10년 전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로 한국형 오디션의 흥행공식을 새로 쓰며 ‘오디션 명가’의 명성을 쌓아온 Mnet이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지난 5~7월 방영된 ‘프로듀스 X 101’(이하 ‘프듀’) 투표 조작 파문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안모 PD와 책임프로듀서 김모 CP는 지난 5일 사기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Mnet 2009년 ‘슈스케’로 열풍 시작 #시청자 참여로 스타탄생 신화 구축 #2019년 ‘프듀’ 투표조작 논란에 #PD 구속, CJ ENM 고위직도 입건

김CP는 PD시절 ‘슈스케’를 만든 장본인. ‘슈스케’ 시즌 2부터 합류한 안PD와 서로 오랜 호흡을 맞춰온 사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댄싱9’ 시리즈의 연출자로 바통을 주고받았고,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를 공동연출하기도 했다.

2010년 ‘슈퍼스타K2’에서 우승한 허각. 환풍기 수리공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썼다. [연합뉴스]

2010년 ‘슈퍼스타K2’에서 우승한 허각. 환풍기 수리공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썼다. [연합뉴스]

2009년 ‘대국민 오디션’을 표방하며 시작한 ‘슈스케’는 미국에서 히트한 ‘아메리칸 아이돌’식의 깐깐한 심사와 신인 등용문이라는 틀, 그리고 출연진의 인생 스토리로 화제를 더했다. 특히 검정고시 출신의 환풍기 수리공 허각과 해외파 출신 존박이 결승에서 맞붙은 시즌 2는 케이블 TV 사상 첫 두 자릿수 시청률(두 채널 합산 18.1%)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언더독의 승리는 오디션 프로를 ‘공정경쟁’과 ‘쌍방향 소통’의 장으로 인식하게 했다.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등 지상파도 앞다퉈 오디션 프로를 기획한 이유다.

이후 비슷한 양상의 오디션 프로가 이어지며 시청자들의 관심이 줄어들 무렵 ‘국민 프로듀서’를 내세운 ‘프듀’가 등장했다. 2016년 시작된 ‘프듀’는 기획사 연습생 101명을 모아놓고 무한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시청자 투표로 최종 데뷔조를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형 기획사 출신 ‘금수저’가 아닌 중소 기획사 혹은 개인 연습생 출신 ‘흙수저’도 “내 손으로 데뷔시킨다”는 새로운 시청자 참여 신화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혐의는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각냈다. 구속 중인 안 PD는 ‘프듀’ 시즌 3·4에 대해 순위 조작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CJ ENM 차원의 조직적 공모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CJ ENM 고위직 관계자와 기획사 관계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10여 명이 입건됐다”며 “혐의가 있는지는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프듀’ 다른 시즌과 ‘아이돌학교’(2017)도 투표 조작이 있었는지, 본사 차원의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프듀’ 시즌 3·4를 통해 각각 결성된 그룹 아이즈원과 엑스원 활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1일 첫 정규앨범 발매 예정이었던 아이즈원은 쇼케이스 등 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영화 ‘아이즈 온 미: 더 무비’도 개봉을 연기하고, 이들이 출연해 사전녹화를 진행했던 tvN ‘놀라운 토요일’, JTBC ‘아이돌룸’도 줄줄이 결방을 택했다. 데뷔 전부터 논란에 휘말리면서 방송 활동이 쉽지 않았던 엑스원도 10일 태국에서 열린 ‘K팝 페스타 인 방콕’ 무대를 마지막으로 다음 일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들의 해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여론이 연일 악화하면서 일부 멤버들 소속사를 중심으로 해체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Mnet 측은 “향후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해체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잘못은 방송사가 했는데 피해는 아이돌이 보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향후 몇 년간 활동에 대해 방송사가 지속해서 관여하다 보니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프듀’를 통해 데뷔한 그룹은 CJ ENM과 해당 그룹 소속사가 각각 25%, 멤버별 소속사가 50%씩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시즌2 워너원부터 산하 기획사를 만들어 직접 관리해온 CJ ENM이 사실상 50%의 지분을 챙긴 셈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한 회사가 프로그램 기획부터 앨범 제작 및 유통까지 도맡으면서 K팝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최근 가요계에서는 신생 아이돌 그룹 중 ‘프듀’ 출신이 포함되지 않은 팀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해진 상태다.

김 평론가는 “방송사의 ‘꼬리 자르기’식 대처로는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도 시청자의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방송사의 기만적 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아이돌을 뽑는 콘셉트로 현재 방영 중인 ‘투비 월드 클래스’는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저조한 상태다.

하지만 Mnet은 여전히 오디션 프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내년 초 방송 예정인 ‘십대가수’도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2001~2010년 사이 출생한 10대가 참가해 노래를 부르고, 10대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선발하는 방식이다. Mnet 측은 “‘퀸덤’과 ‘쇼미더머니8’의 경우 참관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투명성 강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십대가수’는 아예 문자투표를 진행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강혜란·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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