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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건 보수 통합론의 4대 변수…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시동은 걸었지만 속도는 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간 통합 논의가 그렇다. 한국당은 당내 통합 실무팀을 만든 데 이어, 원유철(평택갑·5선) 의원을 통합추진단장으로 내정하며 본격적인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한국당 초·재선 의원들도 잇따라 모임을 갖고 "통합하자"는 메시지를 내며 지원 사격 중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속도는 안 나는 것 같다"(심재철 한국당 의원)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속담처럼 양측 합의가 쉽지 않거나, 판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변수들이 있어서다.

①선거법=근본 변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선거법·공수처법 여야4당 패스트트랙 추진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선거법·공수처법 여야4당 패스트트랙 추진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통합 논의를 뿌리째 흔들 변수다. 개정안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군소 정당에 유리한 방식이다. 게다가 비례 의석(47석→75석)은 늘고 지역구 의석(253석→225석)은 줄어든다. 이 같은 특성상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변혁이 독자 세력으로 있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보수 지지층의 지역구 의석은 한국당, 비례대표 의석은 변혁이 분점(分占)해 보수 진영의 의석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방식이다. 김무성(부산 중-영도·5선) 한국당 의원이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최근 황교안 대표에게 ’연동형 비례가 우리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도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고 전한 일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시 의원직 총사퇴를 검토해야 한다"(12일 재선의원 모임)고 할 정도로 선거법 개정안에 확고한 반대 입장이다. 김무성 의원도 "황 대표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정을) ’막아야 할 거 아니냐, 막으려면 비상한 결심해야 한다‘고 말하자 황 대표도 ’그리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12일 절충안으로 제기된 ‘240(지역구)+60(비례)’ 안은 기존 개정안보다는 현실성이 있다고들 본다. 지역구 의석 감소 폭이 13석(개정안은 28석)이란 이유다. 이 때문에 한국당 일각에선 "여야 4당 사이에 절충안이 나오면, 우리가 제시한 의석수 30석 축소안(지역구 270석+비례대표 0석)을 기초로 협상하긴 해야 한다"(초선 의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만큼 선거법 개정안의 향배에 따라 통합 논의도 요동칠 수 있다. 한국당에서 "통합은 (패스트트랙 법안 결론이 난) 12월 중순 이후 그림이 그려질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②공천룰=현실적 변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변혁 대표. [연합뉴스·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변혁 대표. [연합뉴스·뉴스1]

개별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사(生死)를 결정할 통합 정당의 공천룰은 현실적인 뇌관이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당은 현행 당헌·당규에 기반해 '공천심사위(공심위)'를 통한 ▶단수추천(후보자 간 차이 클 경우) ▶전략공천 ▶경선(국민·당원 각 50%) 등의 방식을 선호한다. 양측 의견이 특히 엇갈리는 건 그중에서도 경선룰이다. 변혁은 완전한 '국민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한국당은 국민(50%)과 당원(50%)이 고루 포함된 경선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차이는 각 세력의 유불리에 기반한다. 단수추천, 전략공천에는 현 한국당 지도부 입김이 관여할 여지가 커지고, 당원 50% 경선 역시 책임당원이 많은 한국당에 유리한 만큼 변혁은 수용 불가 입장이다. 반면 국민여론조사 방식은 지도부 영향력, 책임당원 머릿수 등 한국당이 가진 이점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간 양측 물밑 접촉에서도 이 같은 이견이 맞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김무성 의원은 12일 '열린 토론, 미래' 세미나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과 변혁 양쪽이 수용할 수 있는 공천제도를 만들면 통합이 된다. 이 문제를 예견하고 두 달 전에 던진 화두가 완전한 국민경선으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공천 제도를 만들면 통합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혁에 통합할 수 있는 정치적 유인(여론조사를 통한 공천)을 줘야 통합이 성사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이와 관련 한국당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해 인적 쇄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③내부 반발=잠재된 변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통합을 본격화할 경우 나올 수 있는 내부 반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숙제도 남는다. 한국당에서는 "유승민 의원은 안 된다"며 일부 친박계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김진태 의원이 지난 8일 강원지역 의원들과 함께한 황교안 대표와의 만찬에서 "당에 대혼란이 온다"며 변혁과의 통합에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황교안 대표가 12일(수도권·충청권)·14일(영남권) 중진 의원들과 잇따라 오찬 회동을 하는 것도 내부 갈등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최근 한국당에서는 '유승민 반대' 목소리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친박계가 다수 포진한 한국당 초·재선 의원 모임 '통합과 전진'도 지난 7일 통합 지지 선언을 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 의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당 통합추진단장에 원유철 의원이 임명된 걸 두곤 내부 논란이 있다. 권성동(강릉·3선) 의원가 황 대표에게 ‘대표님, 자꾸 월권적인 발언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통합추진단장으로 원(유철) 의원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유승민 의원과 신뢰 관계가 없습니다’란 문자를 보낸 게 12일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원 의원이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때, 청와대 편에 섰던 이력 때문이다.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한 안철수 전 대표 [뉴욕=연합뉴스]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한 안철수 전 대표 [뉴욕=연합뉴스]

변혁에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선택과 그에 따른 안철수계의 움직임이 숨은 뇌관이다. 앞서 "한국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공개 선언한 권은희(광주 광산을·초선) 의원은 12일에도 "유승민 대표가 제시한 3대 조건(▶탄핵의 강 건너자 ▶개혁보수로 가자 ▶낡은 집 허물고 새집 짓자)은 한국당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래서 '통합은 없다'고 결론 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안철수계 비례대표 초선 6명(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의원)의 반응도 안 전 대표의 입장에 따라 요동칠 수 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안 전 대표는 이날까지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와 관련 권 의원은 "늦어도 12월에는 안 전 대표를 직접 보고 소통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에서도 안철수계를 주목하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이날 "유승민을 넘어, 안철수까지 함께하는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④박근혜 의중과 사면=돌발 변수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오전 어깨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오전 어깨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주장은 유승민 변혁 대표가 제시한 3대 조건 가운데서도 첫머리에 있다. 탄핵의 잘잘못을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 취지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9일 "한국당이 ‘탄핵의 늪’에서 허덕이다 이 정권의 폭정과 무능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반성의 메시지를 내며 유 대표 주장에 화답했다. 한국당 친박계에서도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이라든지 탄핵이라든지 이런 게 (통합 논의의) 전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우리 당 의원들 대부분의 마음 아닐까 생각한다"(정우택 의원)는 말이 나오는 만큼 한국당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중이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할지, 그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 행보를 하게 될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려있다. 많이 줄었다곤 하나 열혈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어서다. 박 전 대통령이 여권을 비판할지, 아니면 탄핵에 동조한 야권 정치인들을 비난할지에 따라 판이 요동칠 수도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연말 특별사면과 관련 "사면은 계기마다 혹시 필요성이나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준비는 해둔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국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사면 직후 탄핵 책임론이 또 불거지면 보수 통합에는 초대형 악재"라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입장, 그에 따른 보수층의 반응 등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텐데 현재로선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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