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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신안군 이장·어촌계장, 프랑스로 달려가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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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004개 섬의 고장이 보여준 포용 성장의 길

갯벌참굴 양식의 꿈을 키우는 차명호씨와 신상수 신안수산연구소 담당, 박재영 어촌계장.(왼쪽부터) 노랑·초록 수조에는 먹이인 플랑 크톤이 들어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갯벌참굴 양식의 꿈을 키우는 차명호씨와 신상수 신안수산연구소 담당, 박재영 어촌계장.(왼쪽부터) 노랑·초록 수조에는 먹이인 플랑 크톤이 들어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신의도 육 형제 소금밭입니다!” 전남 신안군 신의면 원목리 강선홍(49) 이장의 휴대전화에서 들려온 컬러링이다. 그가 운영하는 염전 광고다. 강 이장은 학창 시절과 군 복무 정도를 빼고는 쭉 고향을 지키며 염전 일을 했다. 그런 그가 내년 초 프랑스로 한 달 연수를 떠난다. 세계적 명품인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 제조 비법을 배우러? 그렇다면 신안군 안좌면 우목리 박재영(39) 어촌계장이 함께 프랑스에 갈 리 없다. 박 계장의 주업은 낙지잡이다. 한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2015년 고향에 돌아왔다. 외국에 간 건 약 15년 전 미국 출장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프랑스에 가려고 처박아 뒀던 여권을 꺼내보니 유효기간이 지나 2주 전에 새로 만들었다. 아내와 눈에 밟히는 일곱 살 큰아들, 두 살배기 쌍둥이 아들과 떨어져 만리타향에서 한 달을 지내기로 했다.

주민 소득원·일자리 발굴하는 #신품종 ‘갯벌참굴’ 양식 사업 #지자체가 신산업 교육도 하는 #포용성장 프로젝트의 본보기

차명호(55)씨는 이들과 같이 연수를 가려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포기했다. 보험설계사였던 그는 태어난 신안군 자은면으로 지난해 귀향했다. 차씨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일은 강 이장, 박 계장과 같다. 고향에서 이 일을 하겠다고 정부에 귀어(歸漁) 자금을 신청해 3억원을 저리 융자받았다. 이들은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카사노바 즐겨 먹던 갯벌참굴

중앙정부건 지자체건, 현금 뿌리기에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선심성 복지와 곧 증발할 단기 일자리 만들기만 넘친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라”는 격언과는 정반대다. 그런 가운데 신안군이 좀 색다른 시도를 했다. 양식 시범사업을 하나 해보고는 성과를 봐서 주민에게 추천하고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다. 비유하자면 ‘물고기 품종까지 콕 짚어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목적은 당연히 일자리와 소득 증가다. 돈벌이가 생기면 청년들도 돌아오리라고 봤다.

어린 갯벌참굴. 프리랜서 오종찬

어린 갯벌참굴. 프리랜서 오종찬

신안군의 눈에 들어온 건 ‘갯벌참굴’이었다. 유럽 등지에서 샴페인·화이트 와인과 함께 즐겨 먹는 수산물이다. 카사노바가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 흔히 보는 굴처럼 바닷물 속에서 양식하는 게 아니다. 갯벌에서 밀물·썰물, 사리·조금에 따라 물에 들어갔다 물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큰다. 다닥다닥 붙지 않고 하나하나 떨어져 자라기에 ‘개체굴’이라고도 부른다. 큰 것은 거의 어른 손만 하다. 외국에서는 일반 굴의 4~5배 값을 받는다.

갯벌참굴 양식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넓디넓은 신안의 갯벌을 활용한 신산업이다. 박우량(64) 군수와 신상수(43) 신안수산연구소 담당 등이 원조인 프랑스 현지의 갯벌참굴 생산·판매 실태를 둘러봤다. 신상수 담당은 “중국에서 와인·수산물 소비가 증가해 갯벌참굴 수요 역시 늘어날 조짐이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언덕이 많다. 신안군 갯벌을 드나드는 바닷물에 먹이가 풍부한지, 다른 환경도 맞아 떨어져 양식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는데, 무조건 양식하라고 주민들 등을 떼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신안군이 ‘주민들보다 먼저 문을 두드려보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양식 성공 가능 여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마침 국내에 갯벌참굴 번식·양식 기술을 가진 해양수산 바이오 업체 ‘씨에버’가 있었다. 여름철에 독이 없는 굴을 길러내는 기술까지 자체 개발한 회사다. 유전자 조작 없이 단순 교배를 통해 산란을 억제함으로써 산란기에 굴이 품는 독성을 없애는 기술이다.

씨에버와 협력해 신안수산연구소에서 갯벌참굴을 번식시키고 새끼 굴을 길렀다. 어느 정도 자라자 지난달 갯벌에 양식 시설을 설치하고 성장 과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능성을 진단해 나가는 동시에 올 3월 양식학교를 개설해 인력을 양성했다. 관심 있는 주민 12명이 입학했다. 지난달 교육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현지 양식학교 연수 신청을 받았다. 신안군과 개인이 비용 50%씩을 댄다. 개인 부담이 600만원이 넘는다. 어민들에게 절대 적지 않은 돈이다. 여기에 강 이장과 박 계장 등 5명이 가게 됐다. 염전 사업을 하는 강 이장은 “1%의 성공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야 하기에 프랑스에 가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절박한가.
“천일염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가정에서 김장하고 장 담그고 요리를 많이 해야 천일염 수요가 생기는데, 생활 패턴이 확 바뀌었다. 한식 세계화 흐름을 타고 천일염을 만들겠다며 신안군에 온 젊은이들이 곤란해졌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큰돈 들여 프랑스에 연수를 간다.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인가.
“소득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장 협의회장이자 어촌계 간사다. 새 정보를 습득하고 새 기술을 익혀 주민들에게 전파할 책무가 있다. 그래서 가는 거다.”

낙지잡이 어선을 운영하는 박재영 어촌계장 역시 “마을 대표 격으로 연수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낙지잡이도 어려운가.
“모든 어종의 어획량이 점점 줄어든다. 젊은이들이 마을에 들어와도 먹고 살 일을 찾기 힘들다.”
잡는 게 힘들면 양식은 어떤가.
“신안이 김·새우 양식으로 유명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기존 주민들이 하고 있다. 청년들이 들어와 새로 경쟁할 구도가 아니다. 젊은이들은 뭔가 새로운 사업을 가져와야 한다. 갯벌참굴 같은 신종 양식사업이 어울리지 않을까.”
다 큰 갯벌참굴은 길이가 약 15㎝에 이른다. 프리랜서 오종찬

다 큰 갯벌참굴은 길이가 약 15㎝에 이른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향으로 귀어한 차명호씨는 “인생 2막이 여기에 걸려 있으니 시범사업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 여부에 대해 아직은 신중한 입장”이라면서도 “갯벌참굴만의 장점이 있다”고 했다.

장점이 뭔가.
“무엇보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이를 살려 여름에 갯벌참굴 축제를 하면 ‘이게 뭐냐’고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겠나.”
단점이나 우려는 없나.
“단점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이 보이면 너도나도 뛰어들 거다. 신안군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사업인데, 나중에 외지인 등이 뛰어들면 초기 투자자와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거꾸로 가는 정부의 포용성장

신안군의 갯벌참굴 양식은 아직 성공을 얘기하기엔 섣부르다. 1년 가까이 키워야 해 일러도 내년 여름에야 성패 여부가 가려진다. 양식 성공이 꼭 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값에 팔려야 신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갈 길이 많이 남았다.

그래도 신안군의 시범사업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진정한 ‘포용성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업이어서다. 세계은행은 ‘포용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보고서에서 “포용성장은 직접적인 소득 재분배보다 생산적인 고용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어려운 계층에 보조금·장려금·수당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찾아주는 게 본질이라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포용성장이 직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저소득층이 고부가가치 산업에 일자리를 잡으려면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게 필수다. 어업과 양식업, 천일염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신종 양식 산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주민에게 관련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신안군이 바로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정작 포용성장을 내건 정부는 어떤가. 임시직 일자리 만들기, 그리고 현금 뿌리기에만 급급하다. 직무 교육은 반대로 줄고 있다. 최근 1년간 직업 교육·훈련 이수자 비율이 53.9%로 전년보다 2.6%포인트 감소했다.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거꾸로 간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돈을 쏟아 부어대는 와중에 나라 곳간만 파탄 나고 있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