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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산다" 황혼 육아에 울고 웃는 할마·할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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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39)

“호호호! 너 때문에 산다. 아이고, 너 때문에 못 살아.” 아무리 변덕스러운 게 사람이라곤 하지만 이건 또 무슨? 다름 아닌 황혼육아로 즐겁거나 때론 괴로운 조부모, 요즘 말로 할빠·할마들의 심정이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명언(?)은 그래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너 때문에 살고 너 때문에 못산다” 

동네 놀이터에서는 손주들을 돌보는 조부모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아이패드7,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동네 놀이터에서는 손주들을 돌보는 조부모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아이패드7,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우리 아파트 뒤편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언제 봐도 그곳은 한산하다. 조물조물 흙 놀이를 하는 아기도 없고 씽씽 그네를 타는 어린이도 보이지 않는다. 야밤에 휴대폰으로 야구 중계를 보는 아저씨들은 가끔 있지만 말이다. 하긴 예닐곱 살만 되어도 온갖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요즘 아이들인데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오후 네 시쯤 됐을까? 놀이터 옆의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데려가려는 어른들이 무리 지어 모여 있다. 얼핏 보아선 엄마인지 이모인지 모를 젊은 층과 할머니, 중년 여인들이다.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갈라져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다. 길 건너 어린이수영장은 수질이 그닥 이라든지 아동복 패밀리세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 물론 젊은 아기엄마들 무리의 대화다.

한편에선 전혀 다른 주제로 대화가 오간다. 어깨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엘 다니는데 좀체 낫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자꾸만 침침해지는 눈 때문에 손주 그림책 읽어주는 게 힘들다는 말도 한다. 황혼에 찾아온 만만찮은 육아가 힘든 모양이다.

그때 귀여운 아이들이 저마다 “엄마, 할머니, 이모”를 부르며 뛰어나왔다. 덥석 아이를 안아주는 이는 조금 전까지 못 살겠다며 어깨통증을 호소하던 할머니다. 양 볼에 쪽쪽 입맞춤을 해대며 하는 말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 아이고 예쁜 내 새끼, 내가 너 때문에 살지 암.”

독박육아 거쳐 이젠 황혼육아 

거리에서나 시장에서도 조부모와 함께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진 김혜원]

거리에서나 시장에서도 조부모와 함께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진 김혜원]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던 날, 우리들의 대화는 어느새 많이 변해 있었다. 중년의 갱년기 여자들에게 시댁이나 남편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 여기저기 쑤셔대는 관절 등 건강문제와 위협하듯 달려드는 노후문제가 주 내용이다. 그리고 그 틈에 훅! 하고 들어온 녀석, 바로 황혼육아다. 결혼이 늦었던 난 아들이 아직 20대 초반 대학생이다. 나머지 친구들은 결혼적령기거나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는 자식들을 두고 있다. 개중엔 벌써 내년 봄에 손주를 볼 예정인 친구도 있다. 그러니까 예비 황혼육아 세대인 것이다. 걱정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우리의 대화 주제 일 순위는 이제 황혼육아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손주들을 키우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애들을 키울 땐 당연히 혼자 키웠는데 요즘엔 그걸 독박육아라고 한다지? 그 시절엔 토요휴무도 없었고 직장 내 회식도 잦아서 남편들이 아기를 함께 돌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아무 말 대잔치에 들어갔다. 괜스레 투정을 부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지자 그래도 손주인데 모른 척할 순 없지 않으냐며 슬그머니 태세를 바꿨다. 결국에는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황혼육아를 할 것인지가 걱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리미리 체력을 키워 놓자고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려면 마음을 젊게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요샌 할빠·할마로 불리는 황혼육아 세대들을 위한 무료강의도 널렸으니 그걸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까지 내놓으면서. 어쨌든 마음의 준비는 필요할 테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저출산율이나 워킹맘의 고충이 신문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인생 2막을 펼쳐야 하는 시기에 고된 육아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황혼육아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기사는 와 닿지 않았다. 당당하고 우아한 노후가 되어야 한다며 자신만만하던 우리였다.

하지만 세상은 마냥 마음처럼 돌아가지만은 않는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막 마음의 여유가 생길 무렵에 찾아오는 황혼육아, 뛰어들기도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내게도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날, 친구들과의 긴 대화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누구는 즐거워서 젊어지고 또 누구는 힘들어서 골병든다는 황혼육아! 닥치기도 전에 겁부터 나는 건 왜일까?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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