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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美 당국자 “방위비 50억 달러 다 받으려는 것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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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꺼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꺼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측이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를 다 받으려는 것은 아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상 초기 고위급 접촉에서 "50억달러는 트럼프 아이디어" #"협상팀에서 2~3개 안 만들어 대통령끼리 담판 짓게 하자" #정의용 안보실장, 지난달 극비 방미해 오브라이언과 회동

10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이 시작하기 전 한ㆍ미 고위급 채널에서 미국의 당국자가 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1차(9월 24~25일)와 2차(지난달 23~24일) 협상 이전 접촉에서다. 외교 소식통은 “미 측 당국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0억 달러에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을 원한다’고 전한 뒤 ‘이것(50억 달러)은 그(트럼프 대통령)의 생각(his idea)’이라고 덧붙였다“고 말했다. 미 측 당국자는 ”양국 협상팀에서 2~3개 안을 만들고, 대통령들(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담판을 짓게 하자“고 제안했다고 이 소식통이 전했다.

미국 고위당국자는 50억 달러보다 낮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안을 여러 개 만든 뒤 양국 정상간 협의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게 외교당국의 판단이다.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한ㆍ미의 입장차가 아주 크기 때문에 실무급에서 풀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극비리에 워싱턴을 방문해 존 볼턴의 후임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방위비 분담금 규모안을 포함한 한·미 간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수치라는 게 한ㆍ미 외교가의 공통 인식이다. 정부 소식통은 “미 국무부가 주한미군의 주둔과 한국 방위에 필요한 비용을 산출한 결과가 50억 달러가 아니다. 트럼프가 50억 달러를 먼저 제시한 뒤 국무부가 그에 맞춰 계산서를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미국 측은 이를 위해 올초부터 '글로벌 리뷰'를 진행해 한국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등 전세계 동맹국들에게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의 새 기준을 만들었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남ㆍ북ㆍ미 3자 정상 회동에 앞서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 50억달러이며, 한국 정부가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일각에선 ”50억 달러란 액수는 조정 불가(non negotiable)“라는 말도 나왔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미국 고위 당국자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50억 달러'에 대해 미 정부 내부에서도 '현실적으로 과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주 한국의 여론을 떠보기 위해 방한했던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 협상 미국 측 대표가 국내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 “적정한(appropriate) 방위비 분담 액수를 알아보러 왔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여권 중진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 협상팀도 협상 테이블에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한다는 얘기를 우리 협상팀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훈련 모습. [연합]

주한미군의 훈련 모습. [연합]

이성호 방위비 협상 부대표도 8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1,2차)협상 과정에서 미측이 한미동맹이나 한반도 방위를 위해 기여하는 틀에 대해 광범위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고,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부분이 있어서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50억 달러' 안에는 기존 SMA 틀에서 요구하는 부분이 있고, 한국 측 기여분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볼턴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부ㆍ국방부와 함께 방위비 분담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측이 ‘동맹(한국)에 지나친 요구’라며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펜타곤(미 국방부)에선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우리가 용병이냐’는 반발도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50억 달러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략”이라며 “50억 달러 아래이지만, 그의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수준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원곤 교수는 “이런 상황이 한국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면서 “미국 측 액수를 깎는 단순한 협상전략보다는 확장억제(핵우산) 공약의 구체화와 같은 반대급부를 당당하게 달라는 복합적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재ㆍ이유정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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