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7C 귀족의 아침식사, 지금은 사랑의 묘약…초콜릿의 변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지영의 세계의 특별한 식탁(15)

언젠가부터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하여 친한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연인들이 빼빼로 과자나 초콜릿을 서로 전하는 날로 자리매김 됐다. 초콜릿과 같이 사랑을 전하는 대표적인 음악으로 세레나데가 있는데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러포즈할 때 사용하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초콜릿의 원산지인 남미의 마야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를 보면 카카오나무에 옥수수 신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옥수수만큼 초콜릿을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마야의 한 추장이 초콜릿이 담긴 항아리에 손대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모습의 그림을 보면 마야에서도 초콜릿이 아주 귀하게 여겨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의 초콜릿은 남녀 간의 사랑의 징표로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한 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사진 Wikimedia Commons]

오, 성스러운 초콜릿이여!
사람들은 무릎 꿇고 갈고 있고,
두 손 모아 당신을 부수고 있구나.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마시네.
*스페인 발렌시아 시인의 초콜릿을 찬양하는 시

초콜릿과 세레나데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의 초콜릿은 남녀 간의 사랑의 징표로,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한 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사진 pxhere]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의 초콜릿은 남녀 간의 사랑의 징표로,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한 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사진 pxhere]

낭만적인 사랑의 노래, ‘세레나데(Serenade)’란 말은 ‘늦은’이란 뜻을 지닌 ‘세루스(Ser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늦은 시각에 연주되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연인의 창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낭만적인 사랑 노래로 기타나 만돌린처럼 손가락으로 현을 퉁겨 연주하는 발현악기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사랑노래를 가리킨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만돌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장면이 바로 세레나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오, 사랑하는 이여 창가로 와주오. 여기 와서 내 슬픔을 없애주오. 내 괴로운 마음 몰라주면 그대가 보는 앞에서 목숨을 끊으리…”라는 가사에서 들려주듯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다운 이 프로포즈를 거절할 여인은 없을 것 같다.

카카오 원두는 멕시코 원주민이 음료 또는 약용으로서 귀히 여겼으며, 화폐로도 유통됐다. 15세기말 아메리카를 4번째로 항해하던 콜럼버스가 유카탄 반도 연안의 카카오 열매를 처음으로 유럽에 가지고 들어갔다. 16세기 초 멕시코를 탐험한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스페인의 귀족층에 이를 소개함으로써 17세기 중반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됐다.

몬테수마 황제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에 관한 책인 『신스페인 정복의 진상』에서 황제의 식사에서 거품이 이는 최고급 초콜릿이 순금잔에 담겨 수시로 나왔는데, 몬테수마왕은 정력을 위해 하루에 50잔의 초콜릿을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콜릿 음료는 바로크시대에 이르러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바로크시대의 초콜릿은 그 시대에 어울리게 화려하고 정교했고 주로 귀족들의 아침식사로 애용되었다. 귀족들은 찬물을 한 컵 들이킨 후 하녀가 침대로 가져온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마시는 초콜릿, 에트로 팔카 작품. [사진 Wikimedia Commons]

아침에 마시는 초콜릿, 에트로 팔카 작품. [사진 Wikimedia Commons]

이와 같이 초콜릿은 귀족의 전유물처럼 됐다. 하지만 초콜릿 냄새를 맡으며 열심히 거품을 내야 하는 하녀들은 이 비싼 음료를 공식적으로 맛볼 수 없어 몰래 초콜릿을 훔쳐 먹기도 했다.

당시 음악을 사랑한 부유한 귀족들이 파티를 열 때 서정적인 세레나데 풍의 가볍고 듣기 좋은 음악이 필요했다. 때문에 귀족들의 후원을 많이 받던 모차르트는 그들이 원하는 행사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많은 세레나데가 탄생했다. 연인을 유혹할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닌 귀족의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세레나데는 굉장히 밝고 명랑했다. 파티에서 세레나데의 밝고 감미로운 음악과 달콤한 초콜릿은 참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초콜릿이 발견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초콜릿은 여전히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아즈텍과 마야인들 역시 초콜릿 음료를 마시면 힘이 생긴다고 믿고 있었고 예로부터 초콜릿은 정력제와 같아서 사랑의 기분을 한결 고조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뇌의 세로토닌이 감소하면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 초콜릿을 먹으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초콜릿은 '천연 복합 우울증 치료제'라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뇌의 세로토닌이 감소하면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 초콜릿을 먹으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초콜릿은 '천연 복합 우울증 치료제'라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초콜릿에는 수백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이중에서도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은 중추 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인 암페타민(amphetamine)과 비슷한 물질로 도파민을 분비시켜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처럼 맥박을 뛰게 하기 때문에 사랑의 묘약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하면 뇌에서 페닐에틸아민을 분비한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라고 알려진 페닐에틸아민은 초콜릿에는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초콜릿은 오피오이드(opioid)라는 물질의 생성을 자극하는데, 오피오이드는 아편과 비슷한 물질로 통증을 감소시키고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또한 초콜릿은 뇌의 엔도르핀(endorphin)과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의 분비를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뇌의 세로토닌이 감소하면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 초콜릿을 먹고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면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초콜릿이야말로 ‘천연 복합 우울증 치료제’인 셈이다. 깊어가는 가을 감미로운 세레나데의 선율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자. 달콤하게 녹아드는 초코렛을 머금고 우아하게 세레나데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멋진 궁전의 유럽 귀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세종대 관광대학원 겸임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