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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핑크 타이드’ 부활…경제 블록 ‘메르코수르’ 균열 우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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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호 06면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로이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로이터]

남미의 강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관계가 심상찮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다음달 10일 열리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한다. 대신 오스마르 테하 시민권부 장관을 정부 대표로 보낼 예정이다. 브라질 대통령이 이웃 나라인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식이 불참하는 것은 17년 만이다.

좌파 아르헨 정권, 브라질과 싸늘 #룰라 전 대통령 석방도 촉구 #베네수엘라 해법 갈등 커질 듯

AP통신 등은 “극우파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좌파인 페르난데스 당선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페르난데스 후보가 승리하자 축하 인사는커녕 “최악의 선택이다. 아르헨티나는 다시 수렁에 빠졌다”고 힐난했다.

두 사람은 대선 전부터 반목했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폭력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이자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또 부패 혐의로 수감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남미 좌파 진영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페르난데스 후보 대신 우파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을 공개 지지했다.

아르헨티나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중남미의 정치 지형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에 이어 아르헨티나에도 좌파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좌 진영에 힘이 한층 실리는 분위기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중남미에서 2위와 3위일 만큼 역내 비중이 크다.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물결)’가 다시 밀려오는 모양새다.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은 최근 몇 년간 중남미에서의 우파 득세에도 제동을 걸었다. 현재 중남미 좌파 지도자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등이다.

이들은 페르난데스 당선을 일제히 환영했다. 경제 규모가 큰 아르헨티나가 남미 좌파 블록에서 중심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우리 형제 페르난데스에게 축하와 혁명의 포옹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첫 방문국도 멕시코였다. 좌파 블록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중남미 국가들의 대응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좌파 정부의 등장으로 아르헨티나가 더 이상 마두로 정권 퇴진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이제 브라질·콜롬비아·칠레만 마두로 퇴진에 한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자칫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관계 경색으로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메르코수르에는 두 나라 외에도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가 참여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와의 외교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페르난데스 당선인이 메르코수르와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방해하면 경제 블록에서 아르헨티나를 쫓아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지 언론들은 영국의 EU 탈퇴를 빗대 ‘메르코엑시트(Mercoexit)’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앞길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최악의 경우 아르헨티나 또는 브라질이 메르코수르를 탈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로이터통신은 “브라질은 좌파가 패권을 쥔 아르헨티나가 보호무역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며 “이럴 경우 양국 간 무역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양국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는 충돌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의 4대 교역국일 만큼 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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