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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방위비, 5G…미 3인방, 민간 직접 공략했다

중앙일보

입력

한일정보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위해 서울에 동시 출격했던 미 고위급 3명이 이번 방한에서 한국 정부만 아니라 민간을 상대로 직접 접촉하며압박전을 펼쳤다. 8일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 협상 미국 측 대표가 한국을 떠나면서 전날 출국했던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 등의 '3인방'의 방한이 마무리됐지만 이번 동시 출격을 계기로 향후 서울을 찾는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한국 정·재계 직접 접촉이 더욱 활발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리셉션, 포럼, 독대…민간 광폭 접촉

6일 저녁 주한 미 대사관저에서는 이들 3인방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참석하는 대규모 리셉션이 열렸다. 미 측은 이 자리에 정부 인사뿐 아니라 정치인, 기업인들도 다수 초청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를 통하지 않고 대사관이 직접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 이종구 산자위원장 등 국회 인사들은 물론이고 황창규 KT 회장 등 통신업계 인사들도 초청받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미 국무부 키스 크라크 경제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 차관보가 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한·미 관계 발전 방안 및 한·일 관계를 비롯한 지역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김상선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미 국무부 키스 크라크 경제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 차관보가 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한·미 관계 발전 방안 및 한·일 관계를 비롯한 지역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김상선 기자

스틸웰 차관보는 짧은 방한 일정에서도 전직 고외 외교관들을 만났고, 드하트 대표는 독대 등 형식으로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3인방 중 최고위급인 크라크 차관은 7일 한ㆍ미 민관 합동 경제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미국이 한국 정부만 상대해선 한ㆍ미동맹을 제대로 관리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인식해 정계·재계·민간 등으로 면대면 접촉을 대폭 늘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꿈쩍 않는 일본…靑은 “일본이 변해야”

실제 스틸웰 차관보는 지소미아에 심폐 소생을 하기 위해 왔지만, 해법을 찾았는지는 불투명하다. 일본 정부는 먼저 신호를 보내겠다는 의지가 업는 데다 청와대 역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가 중국과 북한에만 이익을 준다(7일 랜들 슈라이버미 국방부 차관보 일본 언론 인터뷰)는 사실상의 이적(利敵) 논리까지 거침없이 들이대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에 지소미아=중국 견제 창날”

미국의 이런 태도는 지소미아가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직결돼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 지소미아는 역내 패권 다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놓은 날카로운 창날 중 하나”라며 “한국이 이를 종료하면 유효한 무기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7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 개회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친뒤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7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 개회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친뒤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크라크 차관이 방한 기간 중 연일 중국 때리기에 열중했던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기업인들이 다수 참석한 7일 민관 포럼에서 “중국은 미국 가치에 적대적이고, 미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인도ㆍ태평양 지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중국 편에 서지 말라는 경고를 노골적으로 보냈다.

미, 화웨이 겨냥 “악의적 사이버 활동”  

크라크 차관은 전날 리셉션에서는 황창규 KT 회장과 SK텔레콤 관계자에게 직접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국내 3대 이동통신사 중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LG 유플러스 측 관계자만 일정 상의 이유로 리셉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미국은 그간 한국에 음으로 양으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경고해왔다. 국무부는 지난 4일 발표한 인도ㆍ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우리는 모든 국가에 위험성 평가에 기반해 기술 공급자에 대해 판단하라고 촉구한다. 이들 중 외국 정부의 지휘를 받거나 부당한 압박 아래 있는 회사들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무부 “한국과 안전한 인터넷 위해 조율”

또 “미국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호주, 일본, 한국 등 유사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정책)조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연 5G 안보 컨퍼런스를 예로 들면서다. 이는 사실상 중국과 화웨이를 염두에 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맞서야 할 악의적 사이버 활동을 하는 주체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을 들며 “이들은 돈, 지적 재산권, 민감 정보를 훔치려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력, 방위비 증액 감당 가능”

미국은 방위비 문제도 역내 위협에 맞서기 위한 동맹에 대한 기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드하트 대표의 방한 목적은 한국의 여론 청취였지만,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미국이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당위성도 제시했다고 한다. 한국의 경제력 규모라면 지금보다 몇배 많은 방위비를 부담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게 미국 입장이라는 것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부 장관이 지난 8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부 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부 장관이 지난 8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부 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 행정부 인사들을 만난 한 전문가는 “아직은 지소미아와 방위비 문제를 직접 연결시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소미아가 종료된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증폭될 가능성이 크고 ‘동맹으로서 한국’의 역할과 의지에 대해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라는 게 워싱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에스퍼 국방도 방한, 지소미아 압박 전망  

지소미아 만료(22일 자정)를 막기 위한 미 고위인사들의 ‘압박 투어’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5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개최를 위해 방한하는 마크 에스퍼 장관도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요청할 전망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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