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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했다"던 文 취임사···12개 약속 중 얼마나 지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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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로 가는 차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면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로 가는 차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면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3000여자 남짓이었지만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훌륭했다”(윤여준 전 장관)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강렬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상징하는 건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는 문구다. 못지않게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많은 약속을 했다.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거나 주요 사안은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겠다, 퇴근길 시민과 만나겠다는 약속들로 담론 성격의 다짐을 빼면 12개 정도를 꼽을 수 있다.

10일 임기 반환점 도는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지금, 문 대통령은 이 약속들을 얼마나 지켰을까. 중앙일보가 접촉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박했다. “거의 안 지킨 건 물론이고, 취임사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양조차 없었다”(윤 전 장관)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했고, 재정 투입을 좋게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소통

문 대통령은 소통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퇴근길에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는 다짐들이었다. 광화문 공약은 공식적으로 철회했고, 직접 언론 브리핑은 없다.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도 마찬가지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임기 초 인기 높을 땐 ‘쇼통’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회견도 하곤 했지만, 경제가 어렵고 안보도 만만찮은 지금 정작 국민과 소통해야 할 때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비판적인 의견 수렴하고 경청하는 게 소통의 핵심인데, 좋은 점수 주기 어렵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사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한다”(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같은 지적도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기자가 민정수석실서 근무하던 김태우 문제를 꺼내니까 ‘국내 이야기하지 맙시다’고 한 장면이 상징적이다. 대화(dialogue)가 아니라 독백(monologue)”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능력이 있다. 소통의 양은 부족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나은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B학점은 주기 어렵고 C학점 정도”(이재국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같은 정도가 후한 평가다.

◇통합

소통 부재는 자연스레 갈등 확산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지지 여부 상관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를 하겠다”, “야당과 대화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 “지역·계층·세대 갈등 해소하겠다”는 약속들도 공염불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인사 문제로 계속 좌충우돌하면서 소통은커녕 불통 대통령이 됐고, 결국 싸움만 벌이다 길거리로 나가 진영대결 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며 “계층 간 통합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없다 보니 인천공항 비정규직 논란에서 보듯 즉흥적 시도만 있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조국’으로 상징되는 인사나 야당과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선 혹평 일색이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의 인선은 탕평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임명 강행이 최악의 수”(최영일 정치평론가), “지지자들만 보고 정치한다”(신율 교수),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없애야 할 존재로 규정했다”(김병민 경희대 객원 교수), “며칠 전 야당 원내대표에게 소리친 강기정 정무수석의 모습이 국회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을 대변한다”(이현우 서강대 정치학 교수) 같은 평가가 줄을 이었다. 윤여준 전 장관은 “민주적 가치가 내면화돼있지 않다”라고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속 약속들과 평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속 약속들과 평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개혁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검찰 개혁은 ‘노무현의 친구’인 문 대통령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문제다. 하지만 권력 개혁에 대한 평가도 박하다. 공수처 등 논쟁적인 사안을 제외하더라도 청와대 권력 견제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탄핵 때 가장 큰 적폐가 청와대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청와대는 얼마나 바뀌었나”라며 “최고 권력 기관인 청와대 권력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율 교수도 “권력기관을 독립시키겠다면 측근이었던 조국 교수를 수사하는 지금의 검찰을 격려해줘야 하는데 어떤가.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 개혁에 앞장서겠다”라고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선 “소비자 편익도 별로 없고, 기업의 경쟁력 올리는 것도 아닌 구호가 난무하다. 불확실성을 너무 키운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투자나 새 비즈니스를 하려는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 목적이 좋고 방향이 옳더라도 속도와 시기는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는 비판이 많다.

◇경제

“경제가 좋을 땐 개혁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개혁의 성과라든지 과감한 조치가 있었다든지 하는 가시적인 게 없다”(이준한 인천대 정치학 교수)는 평가에서 보듯, 전문 분야를 막론하고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일자리를 챙기겠다”며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는 등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되려 시중의 조롱거리가 된 상황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 정책 가성비가 떨어진다. 장기적으로도 ‘타다’ 등 공유경제 관련 이슈를 봐도 진정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책이 따로국밥 식이다”고 비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 경제라는 시도 자체는 좋지만, 개별 내용을 뜯어보면 엉뚱한 일을 한 경우가 많다. 금융산업이 대표적인데, 진입장벽을 낮춰 누구나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인데 이런 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재정 투입을 옹호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불경기 상태에서 “수출도 안 좋고, 민간 분야에서 성장을 못 하고 있는데, 재정 확대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주장이다.

◇안보

전문가들의 평가가 그나마 후한 것이 안보 분야, 특히 북한과의 갈등 완화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북한 이슈에 대해선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시작됐다는 것은 다 인정할 것이다.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2017년만 해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악화됐는데, 지난해는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등 분위기가 전환됐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같은 평가들이 많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금강산 관광을 열어주는 등 더욱 과감한 시도도 필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을 비롯한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윤여준 전 장관은 “한반도 질서는 남북 두 정상의 의지만으로 풀 수 없는, 동북아 질서다. 초기에 밀어붙이다 보니 강대국들의 견제가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외교가 이렇게까지 고립되고 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 등으로 워싱턴에선 ‘한국이 과연 우리 편이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호·이우림 기자 gnomon@joongang.co.kr

도움말 주신분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병민 경희대 객원 교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병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재국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최영일 시사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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