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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후쿠시마 방사능 없애겠다는 말은 판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그린피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숀 버니 수석 원자력전문가. [사진 그린피스]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그린피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숀 버니 수석 원자력전문가. [사진 그린피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7년 반이 지났다.
70%가 숲으로 이뤄진 후쿠시마 지역은 그간 방사능 제거는커녕 방사능 측정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 와중에 지난달 태풍에 휩쓸렸고, 내년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수석 원자력전문가 숀 버니 인터뷰 #"오염 제거했다는 지역 오염 확인" #"日정부 과학 무시하고 정치 수사만"

지난달 드론을 이용해 후쿠시마 주요 오염지역의 방사능을 측정하고 돌아온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숀 버니 수석 원자력 전문가를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사무소에서 만났다.

일본 정부는 '재오염' 가능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한 지점에서 ‘제염 작업 종료’를 선언한 후에는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면 끝이다. 그러나 10월 조사에서 제염했던 지역이 다시 방사능으로 오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보여주기식 제염 작업이란 말인가
후쿠시마 인근 오염지역 현황. [자료 그린피스]

후쿠시마 인근 오염지역 현황. [자료 그린피스]

일본 정부가 제염(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시범 장소로 쓰인 칸노 씨의 집은 나미에 마을에 있다. 오염이 심해 '귀환 곤란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칸노 씨 집을 둘러싸고 있는 반경 수 m 범위의 흙은 모두 일본 정부가 목표로 삼은 안전기준치 시간당 0.23 μSv(마이크로시버트, 방사능 측정단위) 이하의 수치를 나타냈다.
그런데 바로 이 구역 바깥의 흙은 이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일본 정부의 제염작업이 '보여주기'라는 소리다.

10분 거리에 있는 바바씨의 집은 역대 그린피스가 측정했던 지역 중 가장 높은 7μSv/h(1m 높이), 90μSv/h(0.1m 높이)가 측정됐다.
이곳은 제염작업이 어려운 숲 인근에 있다.
그중에서도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가장 높은 수치가 측정된 것으로 봤을 때 비를 통해 씻겨내려 온 방사능이 누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염에 280억 달러, 뭘 위해서?
일본 정부는 2018년 제염작업에 예산을 280억 달러를 배정했다. 그런데 후쿠시마의 70%를 차지하는 숲 지역은 제염을 못 했고, 나머지 30% 지역도 제염을 못 끝냈다. 정부는 '나미에 지역 제염 완료'를 발표하고 소개(疏開, 주민 분산 조치)를 중단했다. 그런데 재오염이 확인됐다.

이전에도 비슷한 재오염 증거가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 강한 비가 오고 태풍이 오면 방사능이 흙 아래로, 지하수로 흘러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방사능은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고, 수십~수백 년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데이터가 없다. 정부 정책에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태풍 하기비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드론을 활용해 지난달 31일 후쿠시마현 나미에 지역 인근을 흐르는 타카세 강을 찍은 사진. 사진상 강 위쪽은 개방된 지역이고, 강 아래쪽은 폐쇄된 지역이다. 방사능 노출 우려가 더 적어 개방된 지역의 강변 방사능 농도가 오히려 더 높게 측정됐다.(초록색>빨간색>파란색 순) 그린피스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후쿠시마 지역 토양 방사능을 쓸어 강물로 유출시킨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자료 그린피스]

드론을 활용해 지난달 31일 후쿠시마현 나미에 지역 인근을 흐르는 타카세 강을 찍은 사진. 사진상 강 위쪽은 개방된 지역이고, 강 아래쪽은 폐쇄된 지역이다. 방사능 노출 우려가 더 적어 개방된 지역의 강변 방사능 농도가 오히려 더 높게 측정됐다.(초록색>빨간색>파란색 순) 그린피스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후쿠시마 지역 토양 방사능을 쓸어 강물로 유출시킨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자료 그린피스]

하기비스 이후 후쿠시마 관련해서는 '오염된 흙을 담아둔 검정 봉지가 없어졌다'가 가장 많이 회자됐다. 후쿠시마 전체에 그런 '블랙백'이 600만개, 130곳에 나뉘어 저장돼있다. 100개 사라졌다는 게 시각적으로는 강렬할지 모르지만, 방사능 유출의 측면에서 유의미하게 많은 양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수질오염이다. 우리 조사 기간이 우연히 하기비스가 후쿠시마를 휩쓸고 지나간 직후였다. 제염작업 안 된 지역에서는 태풍‧폭우가 지나가고 나면 흙에 포함돼있던 방사능이 쓸려나가 지하수를 타고 강물로 흘러 들어간다. 그 영향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다. 드론을 이용해 강변의 오염도를 측정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300m 상공에서 측정하고 있고, 그린피스가 기존에 사용했던 드론 기술로는 100m 상공에서 방사능을 측정했지만 이번에 사용한 건 5~10m 높이에서 방사능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더 직접적이고 유효한 데이터다. 물론 기존처럼 걸어 다니는 방식으로 측정하기도 했다. 수천 개 지점, 여러 가지 높이에서 관측해서 확보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 분석을 막 시작했고, 다음 해 3월 보고서를 낼 것이다.

현재 강물의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는 아무도 연구를 하고 있지 않다. 물을 떠서, 증발시킨 뒤 남은 시료를 수천개 지점에서 분석해야 하므로 큰 연구기관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해야 하는 일이다. 심지어 흙이 이미 다 쓸려내려 간 뒤 블랙백을 건져내기 위해 노동자들을 강물에 들여보내는데, 블랙백 유출보다 그게 더 위험하다.

방사능 오염수 저장 탱크는 믿을 수 있나
태풍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폭우, 강 범람으로 물에 잠긴 후쿠시마 현.[로이터=연합뉴스]

태풍 하기비스가 지나간 뒤 폭우, 강 범람으로 물에 잠긴 후쿠시마 현.[로이터=연합뉴스]

하기비스때처럼 폭우가 지나가면, 지하수도 엄청난 양이 늘어난다. 비가 쏟아지면 숲에서 방사능이 강으로 흘러드는 부분은 대책이 없지만, 늘어난 오염 지하수를 보관하는 탱크는 정부가 관리할 수 있다. 이게 지금 시점에서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저장할 곳 없다’는 말은 사실인가
일본 정부의 지금 논리는 '저장할 곳이 없어서 방류할 수밖에 없었다'인데, 이건 거짓말이다. 2022년까지는 탱크 용량이 남는다. 그런데 후쿠시마 인근에 도쿄전력이 마련한 오염 흙 보관 장소가 있다. 그래서 오염수 태스크포스(TF)가 '흙보다 오염수가 더 시급한 문제니, 물을 대신 저장하면 안 되냐'고 제안했는데, 도쿄전력은 '이곳은 흙 보관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고수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제염인가
방사능에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선 오래 떠나 있는 게 가장 좋다. 나미에를 10년간 비우면 방사성 세슘은 반으로 줄어든다. 지금 제염작업에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는데, 아무리 방호복을 입어도 노출을 아예 막을 순 없다. 게다가, 좁은 지역은 제염이 가능하지만, 후쿠시마 전체를 제염한다? 돈만 많이 들 뿐, 불가능하다. 지금 제염작업의 목적이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 도쿄전력은 이재민 보상금을 월 40만 원 이상 상향하길 거부하고 있는데, '사람을 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제염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건 기업이다. 도쿄전력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지불하는 제염작업으로 후쿠시마 인근 산업경기가 조금 살아났다. 
그럼 오염 지하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해? 이상적으로.
700:1로 희석해서 17~18년 동안 방류하는 시나리오를 연구한 학자도 있긴 한데, 희석해도 방사능 총량은 같기 때문에 '방류 기준'에는 맞을 수 있어도 정답은 아니다. 그린피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일단 저장공간 확보해서 저장해두고, 반감기 여러 번 지나서 방사능이 줄어들면 그때 방사능을 줄이는 처리를 거친 뒤 흘려보내는 것이다.
새 환경 장관 '고이즈미 아들' 좀 다를까?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아들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아들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새 장관 부임 후 일단 '오염수 TF'가 만들어졌고, 어민·시민단체(NGO) 등 압력을 받아서 오염수 대책 중 '탱크 저장'을 선택지로 추가했다. 그 부분은 긍정적이긴 하다. TF가 설령 '오염수 탱크 저장'을 최종안으로 제안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받아들여야 하므로 아직은 알 수 없다.
올림픽, 해도 될까?
올림픽에 대해 그린피스는 직접적인 의견을 내지 않는 게 공식 입장이다. 다만, 지금 후쿠시마 몇몇 지역은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하루에 방사능 오염 흙을 2000 트럭씩 옮기는 건 정상은 아니다. 아베 정부는 2013년부터 "10년이 지났으니 모든 게 통제되고 있다"고 말해왔다. 정치적인 대중 소통 수단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지금 '올림픽'을 자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 '안전하다'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올림픽은 관중, 선수, 관계자, 수많은 사람이 장기간 체류하는 행사다. 가장 가까이에서 야구·소프트볼이 열린다. 방사능이 높은 지역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인지, 개인과 참가국이 결정할 수 있게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가장 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방사능을 없앨 수 있다’는 판타지라는 말인가
후쿠시마 발전소 아래에는 녹은 연료가 1100톤 있는 거로 추측되지만, 아직 그마저도 정확한 계산이 아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10년 안에 다 들어내겠다'고 한다. 이건 과학도, 공학도 아닌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일본 정부는 기본 방사능 원리를 믿지 않고, 통제구역에 들어가서 일하는 인부들에게도 '안전하다'고 전략적으로 거짓을 말한다. 자연에 흩어져 있는 방사능이 비를 타고 지하수로 파고드는 걸 멈출 방법은 없고, 지하수는 계속 오염될 거다. '방사능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판타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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