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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기운""저승사자" 명물이라더니 호러물 된 공공조형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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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문화체육공원에는 높이 2.5m의 백룡 조형물이 있다. 김제시가 지난 3월 78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벽골제 쌍용놀이 전설을 모티브로 백룡의 선한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백룡 조형물이 무섭다고 한다. “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데다 밤에는 아치(몸통)에 빨간색 조명이 들어와 더 기분이 나쁘다”는 게 시민 반응이다.

[애물단지된 전국 공공 조형물] #조각·상징탑·조형건축물…지자체 공공 조형물 6300여점 #거액들여 조성했으나 제대로 활용안되고 혐오감주기도 #14억짜리 고성 무릉도원권역활성화센터 사실상 방치 #고창 주쭈미 미끄럼틀 노란색 몸통 부적절 논란 #세종 소방청앞 '흥겨운 우리가락' 저승사자 연상

강원 고성군의 무릉도원권역활성화센터. 2012년 완공 이후 7년째 활용을 못하고 있다. [사진 고성군]

강원 고성군의 무릉도원권역활성화센터. 2012년 완공 이후 7년째 활용을 못하고 있다. [사진 고성군]

김제시 관계자는 "벽골제에는 예전부터 용 설화가 있었고, 용은 농경문화와 연결되기 때문에 백룡이 있는 공원이 김제의 명소가 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많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시 문화체육공원에 설치된 백룡 조형물. 주민들은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진 김제시]

전북 김제시 문화체육공원에 설치된 백룡 조형물. 주민들은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진 김제시]

전국 곳곳에 있는 공공조형물 상당수가 애물단지 신세다. 많은 돈을 들여 세우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가 하면 주민에게 혐오감을 주기도 한다. 또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철거에 애를 먹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의 공공조형물은 총 6287점이다. 하지만 파악이 안 된 조형물도 많다고 권익위는 설명했다. 공공조형물은 공공시설 안에 건립한 회화·조각 등 조형시설물, 벽화·분수대 등 환경시설물, 상징탑·기념비 등 상징 조형물을 말한다. 대부분 자치단체가 공공조형물을 도시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지역 상징성을 나타내자는 취지로 만든다. 지자체 이외에 다른 공공기관이 만든 조형물도 있다.

◇활용 못 해 무용지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무릉도원권역활성화센터’. 이 조형물은 장독을 만들어 팔던 지역민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겸 건축물이다. 2012년 9월 완공한 조형물은 지상 3층(높이 16m·185㎡) 규모로 회의실, 체험관 등을 갖추고 있다. 사업비는 14억5000만원이다.

이곳은 완공 7년째 활용을 못 하고 있다. 주민 회의나 마을 행사 장소 등으로만 극히 제한적으로 쓰고 있다. 공공시설물로 등록되면서 소득사업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고성군 관계자는 “이 조형물에서 소득사업을 하려면 마을에서 건축비용의 20%를 내고 소유권을 가져가야 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군위군 의흥면 으슬렁 대추정원 내 대추화장실. 6억95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 대추 전시관처럼 보이지만, 화장실이다. 한적한 곳에 있어 이용자가 없다. 김윤호 기자

경북 군위군 의흥면 으슬렁 대추정원 내 대추화장실. 6억95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 대추 전시관처럼 보이지만, 화장실이다. 한적한 곳에 있어 이용자가 없다. 김윤호 기자

경북 군위군은 특산물인 대추를 활용해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2016년 의흥면 수서리에 ‘어슬렁대추정원’을 조성하고, 정원 한가운데에 6억9500만원을 들여 대추 조형물을 설치했다. 화장실 용도인 조형물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면 소재지에서 2.5㎞나 떨어진 한적한 도로변에 자리 잡아 이용객이 거의 없다. 군위군 관계자는 “조형물로 추진하다 화장실로 변경됐다”라고 해명했다.

◇지역에 엉뚱한 조형물로 혐오감 주기도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변에 세워진 ‘마릴린 먼로상’은 눈총을 받고 있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은 2017년 말 영화 ‘7년 만의 외출(1955)’에서 뉴욕 지하철 환기구 위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를 붙잡고 있는 먼로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을 세웠다. 비용은 5500만원이다. 하지만 소양강변과 이 동상의 연관성은 먼로가 6ㆍ25전쟁 직후 이 지역을 찾아 미군 위문공연을 했다는 기록뿐이다.

세종시 소방청 청사 앞의 ‘흥겨운 우리 가락’ 조형물은 저승사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조형물은 2015년 국세청 앞에 설치했다가 혐오감을 준다는 하자 이곳으로 옮겼다. 정부 세종청사 건립에 맞춰 인근 5개 조형물과 함께 설치됐다. 이들 조형물 설치비는 총 10억원이 넘게 들었다. 정부청사관리본부 관계자는 “예술작품을 샤머니즘적 시각으로 봐서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강원 인제군 살구미대표 아래 소양강 둔치에 설치된 메릴린 먼로상. [사진 인제군]

강원 인제군 살구미대표 아래 소양강 둔치에 설치된 메릴린 먼로상. [사진 인제군]

전북 고창군 람사르고창갯벌센터의 주꾸미 미끄럼틀도 부적절한 조형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고창군이 지난해 9월 5억29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 높이 7.9m로, 파란색 받침대에 노란색 몸통과 다리 8개가 달려있다. 몸통 뒤편에는 머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아래로 뻗어 있는 다리 중 하나가 미끄럼틀 기능을 한다. 주민들은 “노란색 주꾸미는 처음 본다”며 “아까운 세금으로 괴물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의 말 머리상은 혐오감을 준다고 한다. 말 머리상은 고령군이 2015년 6억53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 ‘왕국의 혼’이라는 이 작품이 대가야읍내 교차로에 등장하자 일부 주민들이 흉물스럽다고 했다. 고령군 관계자는 "농촌인 데다 흉상이다 보니 주민들이 다소 적응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 고창군 람사르고창갯벌센터의 주꾸미 미끄럼틀. 주민들은 정체성이 모호한 조형물이라고 지적한다. [사진 고창군]

전북 고창군 람사르고창갯벌센터의 주꾸미 미끄럼틀. 주민들은 정체성이 모호한 조형물이라고 지적한다. [사진 고창군]

세종시 소방청 청사 앞에 설치한 '흥겨운 우리가락'조형물.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시 소방청 청사 앞에 설치한 '흥겨운 우리가락'조형물.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프리랜서 김성태

◇애물단지 철거도 쉽지 않아
경북 포항시는 2009년 3억원을 들여 만든 ‘은빛 풍어’ 조형물을 철거한다. 많은 사람이 꽁치가 아닌 고래 꼬리로 오인하고, 조형물이 마치 비행기 추락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포항시는 이 조형물을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자자산처분시스템인 온비드에서 매각 근거가 되는 최소가격(1426만8120원)에 내놨다. 3차례 유찰됐다가 지난달 25일 낙찰됐다.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은빛 풍어' 조형물. [연합뉴스]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은빛 풍어' 조형물. [연합뉴스]

‘은빛 풍어’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공항삼거리에 설치된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대형 조형물이다. 커다란 꽁치의 머리와 몸통은 땅에 박혀 있고 꼬리만 내놓고 있는 모양으로 가로 11m, 높이 10m다. 전국 공모를 거쳐 선정된 이 조형물은 포항이 과메기 특구이자 경북 최대 수산물 산지임을 알리기 위해 설치됐다.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 일대에 조성된 ‘보이지 않는 문’도 철거가 쉽지 않은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높이 3.9m)은 서울시가 2007년 2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하지만 조형물 벽이 차로에 바짝 붙어 도로를 가리고 있어 위험하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지난해 5억원을 들여 철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철거비가 19억원이나 들 것으로 예상하자 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부분 지자체 조형물이 조잡한 데다 설치 이후 스토리 텔링 등을 통한 관광상품으로도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시간이 걸리더라고 충분히 사전 검토 뒤 만들어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전·전주·고성·군위=김방현·김준희·박진호·김윤호·백경서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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