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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이 선배, 잔소리 하지마세요" EBS 펭수에 열광한 203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에 특별 내레이터로 출연한 펭수. [방송 캡처]

2일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에 특별 내레이터로 출연한 펭수. [방송 캡처]

4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출연한 펭수. [방송 캡처]

4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출연한 펭수. [방송 캡처]

펭수의 위세가 대단하다. 어린이 방송용으로 만들어진 EBS 캐릭터지만 2030 세대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방송사 울타리를 넘나들며 맹활약 중이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에선 특별 내레이터로 등장했고, 4일 밤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 초통령 자리를 두고 유튜버 도티와 격돌을 펼쳤다.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이창수 PD도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펭수를 ‘모시고 싶은 보스’로 꼽았으니, 지상파 방송 3사로부터 모두 러브콜을 받은 셈. 라디오 방송 출연과 패션 잡지 화보 촬영, 팬 사인회 개최 등도 이미 마쳤다.

펭수가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구독자 수 40만 명을 돌파했다. [유튜브 캡처]

펭수가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구독자 수 40만 명을 돌파했다. [유튜브 캡처]

펭수의 첫 등장은 지난 4월 EBS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의 10분짜리 코너 ‘자이언트 펭TV’에서였다. 동시에 개설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는 5일 현재 구독자 수 40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포스트 뽀로로’를 꿈꾸며 남극에서 헤엄쳐 ‘BTS(방탄소년단)의 나라’ 한국까지 왔다는 펭귄, ‘EBS 연습생’ 펭수가 불과 7개월여 만에 대세 스타로 자리잡은 비결은 뭘까.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막 나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선량함을 지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친구는 없고 경쟁자만 있던 2030에게 내 주변에 이런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며 펭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주목했다. 이어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젠 자유롭게 말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게 덕목인 시대, 단정한 모범생의 시대가 아니라 단순한 모험생(연습생)의 시대”라며 펭수가 인기인 배경을 짚었다.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팬사인회를 진행한 펭수. 어린이 방송용으로 기획된 캐릭터지만 성인들에게 더 인기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팬사인회를 진행한 펭수. 어린이 방송용으로 기획된 캐릭터지만 성인들에게 더 인기다. [연합뉴스]

거침없는 언행은 펭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선배인 뚝딱이가 충고를 하려하자 “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잔소리 하지 말아주세요”라며 당돌하게 맞서고,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라면서 EBS 사장 이름 ‘김명중’도 스스럼 없이 부른다. 김선영 TV평론가는 “주로 반말을 사용하며 위ㆍ아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펭수의 탈권위주의 모습이 틀을 깨는 파격을 좋아하는 2030의 감성에 들어맞았다. 자기주도적·자율적이면서 쿨한 성격도 2030의 세대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고 말했다. 또 “무례하고 욕심 많고 실수 잦은 펭수의 특징은 기존 EBS 캐릭터와 다르다”며 “이런 새로움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자이언트 펭TV’의 이슬예나 PD에 따르면, 펭수의 애초 타깃은 초등 고학년생이었다. 이 PD는 “EBS를 즐겨보던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거 애기들 보는 거지’라며 외면하고 성인 대상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다. ‘어린이는 순수하다’란 틀에 박힌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니 아이들 보기 유치해진 것 같았다. 아이들을 애기 취급하지 않고 성숙한 인격체로 봐야겠다 싶었다. 어른들 웃음 터지는 포인트에서 아이들도 웃을 수 있는 캐릭터로 펭수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펭수의 출발은 초등생용이었지만 열광적인 반응은 2030에서 나왔다. 이 PD는 “펭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중 만 18∼34세 비율이 70% 정도”라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취업을 해서도 수직적인 위계 구조에 눌려 어깨 펴고 살기 힘든 2030들이 쫄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의사표현을 하는 펭수에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청층 변화에 따라 방송 시간도 바뀌었다. EBS는 올 가을개편에서 원래 오후 6시대 ‘보니하니’의 한 코너로 방송됐던 ‘자이언트 펭TV’를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시켜 금요일 오후 8시30분에 편성했다.

EBS 캐릭터 번개맨(왼쪽)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펭수. 2030 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설정이다. [유튜브 캡처]

EBS 캐릭터 번개맨(왼쪽)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펭수. 2030 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설정이다. [유튜브 캡처]

'온라인 탑골공원'처럼 유튜브를 통해 옛날 방송 콘텐트가 새삼 주목받는 복고 바람도 펭수의 부상에 한몫 했다. 4월 론칭한 펭수 캐릭터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9월 방송된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 대회)’다. MBC의 명절용 예능 ‘아육대(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를 패러디한 프로그램으로, 펭수는 뽀로로ㆍ뿡뿡이ㆍ짜잔형ㆍ번개맨ㆍ뚝딱이 등 2030들이 어렸을 때 EBS에서 접했던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해 복고 감성을 자극했다. 1, 2부로 나눠 올라온 '이육대' 유튜브 동영상은 "파랑 덕후 번개맨 여기서 볼 줄 몰랐다" "나 어렸을 때 짜장형인줄 알았는데 짜잔형이었구나" 등 추억을 곱씹는 성인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총 조회수 200만 회를 넘어섰다.

한편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펭수가 “뭔가 좀 조악하고 허술해보여 주류는 아닐 것 같은  ‘B급 캐릭터’”라는 점을 인기 비결로 내놨다. “유희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젊은 세대들에게 ‘놀만한 거리’를 제공해준 셈이 됐다”는 것이다. 김헌식 평론가도 “펭수 속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모두 ‘알면서 모르는 척’하면서 캐릭터 자체로 소비하며 즐기고 있다”며 “무대본ㆍ무연출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궁금증을 유발하며 재미를 더한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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