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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종, 특정고교 우대 정황" 대학 "정시 확대 노린 '짜맞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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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공정성 제고’ 지시에 따라 진행된 교육부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가 5일 나왔다. 학종이 도입된 지 12년만에 첫 조사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대입 학종 비율이 높은 13개 대학을 대상으로 했다. 24명의 조사단이 대학에서 제출받은 2016~2019학년도 수시 응시자 202만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학생부종합 실태조사 결과 발표 #"서류평가 부실, 정보 제공 부족" #13개대 중 절반 이상 감사 받을 듯 #대학 "특목고 쏠림 수능이 더 심해"

이날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특정 학교 출신이 우대받을 수 있는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13개 대학 중 5곳은 평가자가 시스템에서 지원자의 출신 고교 졸업생의 진학 현황, 학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곳은 지원자의 내신 등급과 동일한 유형 고교의 내신 등급을 확인 가능했다. 이런 정보를 평가에 반영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학종이 도입된 지 10여년 만에 처음 실시된 이번 조사는 지난달 11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됐다. 총 24명의 조사단이 대학들로부터 받은 2016~2019학년도 수시 응시자 202만 명의 자료 등을 분석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대입 전형에서 특정 학교 출신이 우대받을 수 있는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13개대 중 5곳은 평가자가 시스템을 통해 출신 고교 졸업생의 진학 현황, 이들의 학점과 중도탈락률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2곳은 지원자의 내신 등급과 동일한 유형의 고교 내신 등급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정보를 평가에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교 유형별 합격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고교 유형별 합격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박 차관은 "학종 전반에서 서열화된 고교 체제를 확인했다"고도 했다. 과학고·외고·자사고 출신은 일반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내신으로 합격할 수 있고, 과학고·영재고 출신의 학종 합격률이 일반고 출신의 2.9배 높다는 점을 들었다.

고교 격차가 반영되는 다른 통로로 고교가 대학에 제공하는 '고교 프로파일'(교육과정·여건 소개 자료)을 의심했다. 조사 결과 프로파일에 기본 정보 외의 상세 정보를 입력한 학교는 10곳 중 네 곳(37.9%)에 그쳤다.

반면 일부 고교는 진학 실적, 어학성적, 모의고사 성적까지 제공했다. 류혜숙 조사단 부단장은 "프로파일을 활용해 가산점을 부여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 기간이 짧아 단서와 정황만 발견한 상태"라고 밝혔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공정성강화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비교과영역 폐지 등의 내용이 담긴 대입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공정성강화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비교과영역 폐지 등의 내용이 담긴 대입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에 기재가 금지된 사항이 적혔거나, 표절을 발견하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사례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13개 대학은 2019 대입 지원원서 17건 중 기재금지 사항 기록 366건, 표절 228건을 자체 적발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밝히거나 학교 밖 수상 실적을 썼다.

그러나 대학 5곳은 감점·탈락 등 불이익을 주지 않았고 2곳은 평가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며""작은 기업을 경영하시는 아버지"처럼 구체적인 명칭을 기재하지 않는 식으로 규정을 피해간 사례도 발견했다.

2019년 서류평가 시스템 접속 시간. 그래픽=신재민 기자

2019년 서류평가 시스템 접속 시간. 그래픽=신재민 기자

서류 평가의 부실 가능성도 지적됐다. 대학 5곳을 분석한 결과 평가자 한 명이 지원자 한 명의 서류를 평가하는 데 걸린 평균 시간이 대학별로 최소 8.66분에서 최대 21.23분에 그쳤다.

학생‧학부모에 대한 정보 제공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사 대상 대학 중 올해 대입 기준으로 서류평가 요소와 배점을 밝힌 대학은 5곳, 면접 평가요소와 배점을 밝힌 곳은 4곳에 그쳤다.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유은혜 장관 대국민 사과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자사고 일괄폐지나 정시확대 등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잦은 입장 번복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히며 장관 사퇴와 대입 정시확대를 촉구했다. [뉴스1]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유은혜 장관 대국민 사과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자사고 일괄폐지나 정시확대 등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잦은 입장 번복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히며 장관 사퇴와 대입 정시확대를 촉구했다. [뉴스1]

실체를 못 밝힌 의혹도 많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이들 13개 대학에 교직원 자녀가 지원한 사례가 총 1826건이었고, 255건이 합격 처리됐다. 박 차관은 "교직원 자녀가 지원할 때 관련인을 평가에서 제외하는 회피‧제척은 규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반고의 학생부가 자사고‧특목고에 비해 부실하다는 주장도 이번 조사에선 입증되지 못했다. 류혜숙 조사단장은 "조사 대상 대학은 우수 학생이 몰리는 곳이라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 간의 격차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과 김해영 의원실 주최로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확대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김해영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과 김해영 의원실 주최로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확대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김해영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차관은 "해당 대학에 대한 추가 조사와 특정 감사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가에선 실태조사 대상 13개교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이 감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교육부는 학종에서 비교과영역을 축소하는 한편 외고생 등을 겨냥한 특기자 전형을 대폭 축소하고, 저소득층‧농어촌 자녀를 선발하는 고른기회전형을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교육부의 개선안은 이달말 발표 예정인 대입공정성 제고 방안에 담긴다.

대학과 고교 교사 사이에선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방침에 따른 '짜맞추기' 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경쟁력 있는 학생들이 자사고·특목고에 모여 있는 게 현실인데도 대학이 마치 고교등급제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하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은 "자사고·특목고 쏠림은 수능에서 더 심한데도 학종만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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