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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도로 위를 나는 19세 박윤재

중앙일보

입력

2019 JTBC 마라톤 휠체어 부문에 출전한 박윤재와 박정호 감독. 김효경 기자

2019 JTBC 마라톤 휠체어 부문에 출전한 박윤재와 박정호 감독. 김효경 기자

"스피드가 좋아서 휠체어 육상을 합니다."

3일 서울 잠실~경기 성남 순환코스에서 열린 2019 JTBC 서울마라톤. 42.195㎞ 레이스를 마친 박윤재(19)는 휠체어를 탄 채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경기 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히면서 낙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왼팔 찰과상으로 뼈나 근육은 다치지 않았다. 박윤재는 "올해만 세 번째 부상이다. 늘 있는 일"이라며 웃어보였다. 실망스러운 성적에도 "어쩔 수 없다. 다음에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JTBC 서울마라톤은 2009년부터 국내 마라톤 대회 중 유일하게 휠체어 선수와 일반 선수가 함께 달리고 있다. 경기 거리는 42.195㎞로 같고, 앞바퀴 하나와 뒷바퀴 두 개인 경주용 휠체어를 손으로 민다는 점이 다르다. 최고 속력은 시속 30㎞를 넘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들은 1시간20분대로 주파한다. '장애'가 '틀림이 아닌 다름'이고, '차별이 아닌 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에선 니시다 히로키(35·일본)가 1시간32분35초의 기록으로 우승,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니시다는 "JTBC 마라톤 코스는 재미있다. 코스도 좋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2020 도쿄패럴림픽이 있기 때문에 잘 준비할 계획이다. 이후에 다시 이 대회에 출전해 4연패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니시다에 이어 이기학(48)이 2위를 차지했다. IPC 선수위원인 홍석만도 국내 선수 중에선 두 번째로 빨리 골인하며 건재를 입증했다. 홍석만은 "보름 준비했는데 날씨가 좋아 결과가 잘 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3일 열린 2019 JTBC서울 마라톤 휠체어 선수들이 역주하고 있다. 휠체어 선수들은 3개의 바퀴가 달린 경주용 휠체어를 사용한다. 임현동 기자

3일 열린 2019 JTBC서울 마라톤 휠체어 선수들이 역주하고 있다. 휠체어 선수들은 3개의 바퀴가 달린 경주용 휠체어를 사용한다. 임현동 기자

비록 메달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대회 참가자 중 최연소인 박윤재의 레이스도 눈에 띄었다. 박윤재는 30~40대가 많은 휠체어 마라톤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다. 선천성 이분척추증을 갖고 태어난 그는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열 다섯살 때 본격적으로 휠체어 육상을 시작했지만 선수 생활을 할 뜻은 없었다. 이렇다 할 꿈도 없었다. 박윤재는 "그냥 달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육상선수 박윤재가 됐다"고 웃었다.

박정호 안산시체육회 감독과의 만남이 박윤재의 운명을 바꿨다. 휠체어 육상 국가대표 출신인 박 감독은 박윤재의 재능을 엿보고,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제안했다. 그리고 1년 사이, 박윤재는 빠르게 기량을 쌓았다. 서울국제 휠체어 마라톤에서 2위에 올랐고, 올해 장애인체전에선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박 감독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목마름이 느껴진다. 근성도 뛰어나다. 힘든 훈련도 묵묵하게 이겨낸다"고 박윤재의 빠른 성장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상위 입상을 노렸던 박윤재는 아쉽게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경기 막판 선수들과 충돌한 것이다. 휠체어 마라톤은 경기 막판에도 치열한 순위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부족한 경기 경험이 발목을 잡아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공식 기록은 1시간43분46초, 최종 순위는 9위였다. 국내 선수 중에선 네 번째. 박윤재는 "아쉽지만 다음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면 된다"고 말했다.

박윤재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다. 3년 뒤 열리는 아시아 경기대회에 출전하고,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 나간다는 목표도 세웠다. 박윤재는 "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기분은 너무 좋다"며 "고3이라 이번 대회 이후엔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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