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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국의 1020세대는 어떻게 마약에 빠져드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크웹·다크코인을 마약 거래 수단으로 악용
이중 국적 소유한 학생들 거쳐 유통되기도

현장취재 #도처에 깔린 인터넷 광고가 아이들 노린다

올해 10대·2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올해 10대·2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약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됐다. 하루하루 ‘단약(斷藥)’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였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약을 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지훈(가명·21)씨는 만 17세 나이에 처음 마약에 손댔다. 조기 유학에 나선 친구가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소량의 ‘엑스터시(MDMA)’를 숨기고 들어온 게 악몽의 시작이다. 노래방에서 친구가 권한 마약을 접한 뒤로 미대 입시 준비생이었던 그의 삶은 마약의 굴레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3개월쯤 지난 후였나? 갑자기 필로폰 같은 고강도 마약을 함께 투약하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들더니 며칠 동안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어요. 이러다 한순간에 인생이 망가질 것 같다는 두려움도 찾아왔죠. 식욕은 떨어지고 살도 점점 빠지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까딱하다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투약 사실을 더 숨겼습니다. 정말 괴로운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투약 7개월 만인 2018년 3월경, 김씨는 앞서 경찰에게 덜미를 잡힌 지인의 진술로 검찰에 함께 송치됐다. 초범인 것을 고려해 기소유예 판결을 받고 지금은 인천의 한 재활센터에서 중독 치료를 받는 중이다.

유명 연예기획사와 연예인이 연루된 일명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마약 청정지대’라 자부하던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여실히 노출됐다. 강남 클럽 폭력사건에 이어 클럽 내에서 ‘마약류를 이용한 성범죄’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마약범죄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을 법하다.

사실 한국에서 마약은 이미 유명인이나 재벌들이 향유하는 것을 넘어 사회 내부에 깊숙이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1만2613명에 달했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인 경우 ‘마약 청정국(유엔기준)’이라 부른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4명꼴로 이미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에서 적발한 마약류 사범 외 단속되지 않은 암수 범죄까지 더하면 국내 마약사범 규모가 3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추정한다.

마약이 기성세대 범죄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국내 도처에 깔려 있는 마약이 최근에는 10대 청소년과 20대에게도 마수를 뻗치고 있다.

송수신 기록 안 남는 ‘다크코인’으로 거래

검찰청 자료 중 연령별 마약사범 단속 현황을 살펴보면 2017년 27명에 불과했던 10대 마약사범은 올해 7월까지 114명으로, 지난해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20대 마약사범 수 역시 2018년 1392명에서 올해는 7월까지만 1553명으로 이미 작년 수준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에게 유통되는 마약을 선제적으로 단속하지 않으면 10대, 20대 마약사범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 김지훈씨같이 사회에 제대로 발도 들이지 않은 한국의 10·20대가 어쩌다 마약사범이 되었을까. 기자는 9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약 한 달간 김씨를 포함한 젊은 마약사범 4명과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취재를 진행했다.

김지훈씨와 만남은 그를 잘 아는 지인의 간곡한 설득으로 성사됐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말할 때마다 발음이 꼬이고 말이 헛나오기 일쑤였죠. 어머니는 저만 보면 자신이 잘못 키워서 그런 거라고 엉엉 우시고, 아버지는 너 같은 아들은 필요 없다며 몇 달 동안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어요. 저로 인해 온 가족의 삶이 망가졌다고 보면 돼요.”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익명성만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 같은 젊은 마약사범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며, 자신이 마약으로 빠져든 경로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는 요새 젊은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언론에서 ‘떨(대마의 은어)’이나 ‘아이스(필로폰의 은어)’를 인터넷 검색창이나 SNS에 입력하면 판매자의 아이디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보도하지만 사실 이런 곳에 광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파슬리나 진통제 으깬 것을 파는 사기꾼들”이라고 설명했다. 가짜를 팔아도 구매자가 신고할 수 없으니 이 점을 파고들어 돈벌이로 이용하는 판매상들이 온라인상에서 활개를 친다는 것이다.

이는 초짜들도 다 아는 속임수다. 그는 인터넷 사용에 능한 요즘 아이들은 ‘다크웹(dark web)’에 접속해 딜러를 구한다고 했다.

‘다크웹’은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이 불가능하고, 독자적인 네트워크나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접속 가능한 인터넷망이다. IP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아동 포르노나 무기 판매 같은 각종 범죄의 소굴로 사용된다. 김씨는 “최근 청소년이나 20대 청년들이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다크웹’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후, 직접 접속해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다크웹’에서는 믿을 만한 딜러를 구할 가능성이 비교적 커집니다. ‘텔레그렘’이나 해외 메신저처럼 추적이 어려운 방법으로 연락이 이루어지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닌, ‘드롭(물건을 던지고 가는 것)’ 같은 비대면 접촉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죠. 물건을 공중화장실 변기 물탱크 안이나 대합실 밑에 두고 간 뒤 사진을 찍어 보내면 구매자가 확인 후 결제하게 됩니다. 결제는 주로 거래 내역이 남지 않는 암호 화폐를 통해 이루어져요. 비트코인도 몇 년 전에는 많이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송수신 기록이 아예 안 남는 신생 다크코인들을 이용하죠.”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8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실제로 2018년 전체 마약류 사용자 중 다크웹을 통해 마약을 구입한 비율은 11.9%로 4년간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유통 및 투약 사범 중 20대층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8년 17.2%에서 올해 5월 현재 26.6%로 증가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핵정학과 교수는 “요즘 10대, 20대들은 미디어나 각종 SNS를 통해 마약에 너무 쉽게 노출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며 “몇 년 전에도 인터넷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해 마약을 구매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방법이 더 세밀해지고 고도화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강한 환각작용에 비해 저렴한 가격

윤석열 검찰총장은 9월 25일 ‘제29차 마약류퇴치 국제협력회의’에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마약 유통사범을 단속하는 전문수사팀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은 9월 25일 ‘제29차 마약류퇴치 국제협력회의’에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마약 유통사범을 단속하는 전문수사팀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2019년 8월 대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다크웹 전문 수사팀’을 신설했으며, 경찰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부터 두 달 동안 온라인상에서 마약류를 광고해 판매한 이들을 집중 단속했다. 이때 삭제 조치된 광고 게시글만 20만 건에 육박한다.

고정적 수익이 없는 청소년들과 20대 초반의 젊은 층들이 마약 구입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자마자 클럽에서 MD(Managing Director, 매니징 디렉터)로 일하면서 자연스레 마약을 접하게 됐다는 안지훈(가명·22)씨는 “마약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사실 강한 환각작용을 주면서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마약들이 태반”이라고 귀띔했다. “내가 아는바 평균적으로 대마는 그램당 10만~15만원이고 필로폰도 1회 투여분 정도의 양에 10만원 정도다. 엑스터시는 한 알에 4만~7만원 선이다.”

안씨는 자신의 채팅방 아이디로 마약구매를 시연해 보였다. 그가 “‘떨’ 구매를 원한다”는 연락을 남기자 곧바로 “네, 고객님. 시티바 계열의 블루드림이 있습니다. 수치는 thc(흔히 대마초라고 불리는 마리화나류 식물에서 추출된 환각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합물) 퀄리티입니다.” “그램당 15만원으로 유통되는 제품입니다. 지역이 어디세요?” 등의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취재원들의 말에 따르면 신뢰가 쌓인 단골들에게는 ‘고객관리’ 차원에서 환각성이 강한 마약을 샘플 형식으로 끼워주기도 하고, 가끔 물건을 공짜로 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서 어울리다 마약에 빠져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약물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난 최금호(가명·24)씨는 이중국적을 가진 한국 학생들과 국내 외국인들이 주로 다니는 외국인학교에 몸담았었다. 그는 졸업후 동기생들과 클럽에서 놀다가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 친구들은 경찰 단속에 걸려도 비교적 쉽게 풀려날 수 있어서 그런지 클럽 같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마약을 하는 것에 대해 겁을 내지 않았어요. 클럽에서 암암리에 약을 팔던 MD들도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쉽게 마약을 건네기도 했지요. 너도 한번 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그만…. 나 혼자 안 하면 졸보처럼 보일까 봐 술과 함께 삼킨 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습니다.”

사람이 득실대는 클럽에서 대놓고 마약을 해도 아무 탈이 없는 걸까? 누군가 신고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최금호씨는 “주로 LSD나 엑스터시 같은 환각제를 ‘클럽 마약’이라 부른다”면서 “이것들은 대부분 알약 모양이라 투약이 간단하고, 깜깜한 클럽에서 보면 술에 취해 흥겨운 음악에 노는 건지, 약물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건지 분간이 잘 안 간다”고 답했다. 강남 모 클럽의 한 관계자는 “버닝썬 사건 터지고 난 후 오히려 ‘물뽕’이나 ‘졸피뎀’ 같은 데이트 약물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손님들이 늘었다”며 “보도가 되면서 모방 심리를 자극한 거 같다”고 추정했다.

마약 위험성 알리는 조기교육 마련해야

1. 경찰의 대대적인 집중단속 이후에도 클럽에서의 마약 거래는 계속된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 2. 판매상의 채팅방 아이디로 마약 구매 의사를 표하자 이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사진:박호수

1. 경찰의 대대적인 집중단속 이후에도 클럽에서의 마약 거래는 계속된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 2. 판매상의 채팅방 아이디로 마약 구매 의사를 표하자 이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사진:박호수

이철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는 “마약사범의 주 연령층이 예전에는 40~50대였지만 2~3년 전부턴 20~30대로 내려앉는 추세”라고 현장의 기류를 전했다. 이 감사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 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고, 특히 중학생들도 종종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클럽이나 유흥가에서 마약을 접한 이들은 각종 범죄에 노출된다”고 정색을 했다.

경찰청이 클럽 주변 마약류 범죄자를 연령층으로 분류한 결과 20대가 전체의 63.1%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올해 5월 발표한 ‘마약류 등 약물 이용 범죄 집중 단속 결과’) 됐다. 이들 중 44.6%가 무직이거나 클럽 관계자였다고 한다. 또 81.1%가 투약 사범이었으며, 판매 사범은 17.6%에 달했다.

버닝썬 사건 이후 경찰은 올 상반기에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각종 불법행위로 문을 닫게 된 클럽 관계자들이 장소와 상호를 달리해서 클럽을 다시 열어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는 제보도 그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안지훈씨의 말을 들어보자. 예전에 자신과 같이 일했던 20대 초반의 클럽 직원들이 한두 달 잠시 일을 쉬다가 동시다발적으로 강남 모 클럽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안씨의 말대로라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꽤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는 “최근 경찰 단속이 엄해져 과거처럼 대놓고 마약을 거래하지는 못한다”면서도 “클럽을 자주 찾고, 비싼 술을 마시며 노는 소위 20대 ‘금수저’ 자녀들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약 거래가 여전히 횡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미 전부터 ‘형님’ ‘아우’라고 부르면서 지낸 사람들끼리 거래 관계가 쉽게 끊어질 것 같나요? 사회에서 딱히 할 일 없는 이들은 마약 거래같이 돈 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낼걸요.”

염건웅 유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이러한 마약 유통 범죄의 특성과 관련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마약 판매자로서는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고 구매자는 약물로 쾌락을 경험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의미다. 염 교수는 “이런 마약 범죄의 특성 때문에 수사망에 걸리지 않는 한 친밀한 거래 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청소년이나 젊은 마약 중독자들은 일단 마약사범으로 한 번 낙인찍히면 돌아갈 곳이 전혀 없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손을 대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게 마약의 특성이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 마약사범의 재활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이철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는 강조한다. 그는 “정부는 치료 의지가 있는 투약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학교는 마약의 위험성에 대한 조기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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