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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조국’이 준 정시확대 논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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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호 31면

강홍준 사회 에디터

강홍준 사회 에디터

‘교사 60%, 대입 정시확대 반대…학생 진로개발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적합.’ 어제 여러 언론에 나온 기사 제목이다. 전국 고교 교사 33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가 기사로 실렸다. 교사 70%가 ‘학종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고 응답한 내용도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발표한 ‘정시모집 비율 확대’ 방침에 대해 많은 교사가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게시한 현직 교사이자 페이스북 친구는 “선생님 말 들으시오”라고 게시글에 썼다. “학종이 수업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데 왜?”라고 반문하는 교사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

교사 70% 학종 찬성한다지만 #악행 차단 못한다면 이제 그만

교사들이 우려하듯이 정시 모집이 확대되면 수능 고득점을 위해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EBS 교재 풀이에 몰입할 수도 있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가는 길이 막히고, 강남 대치동 학원가는 전국에서 몰려오는 수험생들로 더욱 북적일 수도 있다. 설문조사 내용대로 학종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 점도 부인하고 싶진 않다.

이 대목에서 소위 ‘조국 사태’를 다시 떠올려보자. 왜 다들 분노했는지 말이다. ‘2주 연구 참여 후 논문 제1 저자’, ‘재택 인턴’, ‘성적 무관 장학금’ 등이 불을 지른 키워드 아니었나. 일반 학부모라면 명함도 못 내미는 ‘엄마 찬스’ ‘아빠 찬스’에 열 받았던 거였다.

굳이 팩트를 따지자면 조국 전 장관의 딸이 학종으로 고려대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입학사정관전형으로 포장된 어학특기자전형이었다. 그런데 왜 학종으로 불이 옮겨붙었나. 지금 이 순간에도 모 여고의 전 교무부장이 자기 자녀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것처럼 누군가 ‘아빠 찬스’를 쓰고 있지 않나 불신하고 있어서다. 경기도의 모 사립고에선 교무부장이 자기 자녀의 학생부 기재 내용을 무단 수정하는 등 ‘엄마 찬스’를 썼다가 옷을 벗기도 했다.

제도의 선의마저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맡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말하고자 한다. 그동안 학종이 대세였기에 수업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교사가 평가 권한을 쥐고,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에 써주고 있지 않았나.

대학도 마찬가지다.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전형 과정에 부모들이 써준 논문을 들고 입학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여러 건이었다. 딸의 논문을 위해 제자들에게 연구를 시킨 엄마 교수도 있었다. 파면 팔수록 교수 자녀의 논문 공저 사례는 나오고 있다. 논문 덕분에 합격했다는 입증이 쉽지 않아 부정입학이 더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대학원 과정의 의전원이 다시 학부 의예과 체제로 회귀한 이유 중 하나도 의전원 입시과정에서 작용했던 일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극히 일부의 한정된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지 말라고? 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일부의 잘못으로 싹을 잘라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안타깝지만 그렇게 하기엔 학종이, 그리고 의전원 입시가 불신을 받을 만한 사례가 나왔고, 교사와 교수 집단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

문 대통령이 수시모집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은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권한 있는 사람의 악행을 차단할 대안이 없는 한 학종 확대는 말이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오지선다’가 웬 말이냐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임시방편으로 단판 승부인 수능 선발을 늘리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어쩌겠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배출한 도쿄대나 7명이 나온 쿄토대 모두 우리식 수능인 센터시험과 본고사 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입시는 선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강홍준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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