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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가족 시대의 진화…‘개 헌혈’ 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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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호 02면

지난달 23일 헌혈견 ‘도그너’가 된 춘향이와 보호자 김연옥씨. ‘나는 도그너’라고 적힌 노란 스카프를 맸다.

지난달 23일 헌혈견 ‘도그너’가 된 춘향이와 보호자 김연옥씨. ‘나는 도그너’라고 적힌 노란 스카프를 맸다.

“지난해 14살 된 심청이(리트리버)가 비장 종양 수술 도중 출혈이 심해 수혈을 받게 됐어요. 그때 ‘공혈견(供血犬)’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죠. 철창에 갇혀 피만 뽑히다 죽어야 한다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개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들 소중한 생명인데, 피가 부족하다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신청하게 됐어요.”

현대차, 개 전용 헌혈카 운영 #수혈에 필요한 피 ‘공혈견’에 의존 #반려견 보호자 헌혈 운동에 동참 #2살·25kg 넘는 대형견만 가능 #한 마리가 헌혈하면 4마리 살려 #연말까지 전국 11곳 투어 스타트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사는 주부 김연옥(40)씨가 지난해 입양한 4살짜리 춘향이(올드잉글리쉬쉽독)를 데리고 지난달 23일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에서 열린 ‘개 헌혈’ 행사에 참가하게 된 이유다. 현대자동차가 10월부터 시작한 ‘반려견 헌혈카 전국 캠페인’ 세 번째 자리였다.

헌혈견에 ‘도그너’ 명칭, 스카프·조끼 제공

춘향이의 헌혈증. 신인섭 기자

춘향이의 헌혈증. 신인섭 기자

사실 ‘반려견 1000만 시대’에 ‘공혈견’은 불편한 진실이다. 반려견이 늘어나면서 각종 사고 및 수술에 따른 수혈 수요도 급증하고 있지만, 동물병원에 공급되는 피는 한정돼 있다. 그래서 피가 부족하면 “주인이 직접 구해오시라”는 경우도 있다고 애견인들은 전한다.

반려견, 특히 대형견 보호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인 헌혈 운동이 시작된 것은 그래서 일견 당연해보이면서도 사회적 의미가 적지 않다. 2018년 10월 한국헌혈견협회를 만든 강부성(45) 회장은 그 시작을 이렇게 말한다. “제가 2016년 반려견 팟캐스트 ‘개소리’를 시작했는데, 2017년 7월 어느날 ‘공혈견’ 이야기가 나왔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청취자 중 대형견 보호자들과 함께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헌혈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해 20마리가 동참했어요. 이듬해 중랑구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올해 3월 분당 해마루동물병원과 협약을 맺고 활동 범위를 차츰 넓혀갔지요.”

건국대 동물병원 한현정(왼쪽) 교수와 의료진이 채혈하고 있다.

건국대 동물병원 한현정(왼쪽) 교수와 의료진이 채혈하고 있다.

그 뒤 의정부 서정동물병원, 광주광역시 동물메디컬센터, 노원 24시N동물의료센터, 제주대 부속 동물병원, 일산 동물의료원 등 전국으로 연계망을 갖춰나갔다. 현재 충남대 및 경북대와 논의중이다. “피 부족으로 발을 구르던 보호자들이 저희한테 막 전화하세요. 그럼 어디로 가라, 007 작전처럼 하다보니 헌혈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계 병원까지 오가기에 번거롭고, 그나마 수도권에 편중돼 있으니까요. 마침 저희의 활동을 눈여겨보던 현대자동차와 연결이 되었죠.”

현대차가 만든 반려견 헌혈차의 혈액 분석실.

현대차가 만든 반려견 헌혈차의 혈액 분석실.

현대차는 15인승 솔라티를 개조하면서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 및 한국헌혈견협회의 자문을 받았다. 차량 내부를 혈액 분석실과 채혈실로 나누고, 채혈대는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차량 가격 6000만원에 개조비, 혈액 교반기 및 분석용 장비 등 의료기기 설치비를 합쳐 1억5000만원 가량 들었다.

또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홈페이지도 만들고, ‘부견자견’ ‘대형견의 편견’ ‘아무나 못 하는 헌혈’ 등 유머러스한 짧은 영상도 4편 제작해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헌혈 한 번이 반려견 4마리를 살린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고, 헌혈견은 ‘도그너(DOgNOR·Dog+Donor)’라 부르며 노란색 스카프와 조끼를 제공해 명예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연말까지 전국 11곳 투어도 시작했다. 이철민 현대차 국내마케팅 1팀장은 “9월 23일 시작된 유튜브 영상의 조회율(영상을 끝까지 본 비율)이 47%로 평균 조회율 27%를 크게 웃돌고, 카카오톡 이모티콘 1만 개가 3일 만에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라며 “전국을 순회하는 반려견 헌혈차는 현대자동차 모빌리티(Mobility)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납고 무서운 존재로만 알려진 대형견들에게 헌혈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통합의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가 15인승 솔라티를 개조해 만든 반려견 헌혈카. 연말까지 전국투어를 한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차가 15인승 솔라티를 개조해 만든 반려견 헌혈카. 연말까지 전국투어를 한다. [사진 현대자동차]

희망자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반려견의 각종 정보(예방접종 여부·복용약·성별·출생연도·중성화 여부)를 적어 내면 유선으로 안내를 받는다. 심장 사상충 및 내외부 구충 예방, 종합백신 예방접종을 실시한 2살 이상, 25kg이상의 대형견만 신청이 가능하다. 헌혈카에서는 한 번에 1마리만 검진 및 채혈이 가능하고 보통 2시간 가량 걸리기에 하루 4마리까지 할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날 김연옥씨는 현장에서 의료행위 동의서부터 작성했다. 혈압·심박·호흡수·체온 등 신체 검사와 1차 채혈을 마친 춘향이는 경정맥이 있는 목 주위의 털을 조금 깎고 마취 크림을 바른 상태. 혈액 분석실에서는 20여 분간 검사를 통해 감염성 질환은 없는지, 적혈구는 충분한지, 빈혈은 없는지 등을 체크한다. “정기 검진을 6개월마다 해왔는데, 혹시 문제가 있을까봐 떨리네요. 지난 13일 춘천 행사에서는 사상충 감염이 발견돼 헌혈을 못 했다죠.”

“1년에 한 번, 건강검진 때 헌혈도 하자”

현대자동차가 만든 유튜브 동영상 캠페인 영상.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가 만든 유튜브 동영상 캠페인 영상. [사진 현대자동차]

채혈을 주도할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 응급중환자의학과 한현정(40) 교수에게 과정을 물었다. 그는 우선 “공혈견 관리의 윤리적 문제가 많이 개선됐으나 그래도 공혈견만으로는 피가 부족하다”며 “외국에서는 기증 단체가 많은데 우리도 이제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의 ABO형처럼 개는 DEA형이라고 하는데, 크게 1·3·4·5·6·7·8형으로 구분됩니다. 계속 발견 중이고요. 가장 많은 1형은 검사 키트가 있어서 퍼지티브냐 네가티브냐를 판정하지요. 적혈구 표면에 있는 항원에 대한 항체가 생길 경우 치명적인 수혈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수혈 전에 수혈이 가능한 혈액인지 확인하는 검사가 필요합니다. 체중에 따라, 혈관 상태에 따라 뽑는 양은 달라집니다. 25kg 기준으로 300ml 내외를 뽑죠. 시간도 상태에 따라 30분가량 걸리기도 하구요. 혈액상태 및 감염 검사후 다시 진드기 매개 질환 감별을 위한 PCR(실험실 검사)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쓰지 못합니다.”

이날 춘향이는 총 80ml를 뽑았다. 한 교수는 “이 정도면 소형견 1마리는 살릴 수 있겠다”고 말했다. 도그너의 피는 건국대·경상대·경북대·전남대·충남대 동물병원에 기증된다. 헌혈을 마친 춘향이는 조끼와 스카프, 헌혈증, 바이엘코리아가 제공한 선물 등을 지급받고 한국헌혈견협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비재생성 빈혈로 매번 공혈견의 피를 받다가 저희를 통한 뒤로는 더는 수혈을 안 받게 된 사례가 있어요. 사랑받고 자란 개의 피가 적혈구 수치가 더 높고 질도 좋아 재생이 되는 거라고, 보호자 분은 믿고 계세요.”

강 회장은 이어 “헌혈을 하지 못하는 중소형견 보호자들은 대신 후원금을 내며 응원해 주고 있다”며 “그동안 골든 리트리버나 버니즈 마운틴독이 많았는데 이번에 셰퍼트와 도베르만이 처음 나오는 등 견종도 다양해지고 있어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즐거운 캠페인이 되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겠죠. ‘1년에 한 번, 건강검진하는 날 헌혈도 하자’고 제안하고 있어요. 피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죠.”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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