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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자백 화성 초등생 수색···아버지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원 입구. 경찰과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던 아버지 김모(68)씨가 털썩 주저앉았다. "흑흑…." 딸의 유골을 찾기 위해 들어선 장비와 곳곳에 처진 폴리스라인을 본 뒤 억장이 무너지는 듯 숨을 죽여 오열했다. 일어나 다시 발걸음을 뗐지만, 다리가 풀렸다. 20여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버지는 3번을 주저앉았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진행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 유골 수색 현장에 김 양의 가족이 놓아둔 꽃이 있다.[연합뉴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진행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 유골 수색 현장에 김 양의 가족이 놓아둔 꽃이 있다.[연합뉴스]

김씨는 1989년 7월 7일 화성군 태안읍(현 화성시)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A양(당시 8세)의 아버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사라지자 아버지는 곳곳을 수소문했다.

8차 화성 사건 발생 10개월 뒤 발생한 사건이라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A양의 실종을 단순 가출 신고로 보고 수사했다.

5개월 뒤 인근 야산에서 A양의 치마와 책가방, 속옷 등 유류품 10여점이 발견됐다. 국과수 감정 결과 유류품 3점에서 혈액 반응이 나왔지만, 혈액형 등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물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1년 정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장선에서 A양 실종 사건을 지켜봤지만 이후 '가출인'으로 최종 처리했다.

1990년 11월 17일 중앙일보는 '공포의 마을…시집오기 꺼린다. 또 사건 터진 화성 주민 표정' 기사에서 "A양의 가족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화성군을) '저주받은 곳'이라고 치를 떨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한 화성 초등생 사건 유가족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한 화성 초등생 사건 유가족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유가족들, 수색현장에 꽃 바치며 오열

30년 만에 맞닥뜨린 막내딸의 소식은 참담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의 소행이라고 했다. 이춘재는 10건의 화성 살인 사건 외에 4건의 추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해자 중 하나가 A양이었다. 이춘재는 "A양을 살해한 뒤 시신과 유류품을 범행 현장 인근에 버리고 달아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발굴 작업에 앞서 여동생, 아들과 함께 수색 현장을 찾은 김씨는 수색 지역 초입에 꽃다발을 바치며 A양의 명복을 빌었다. 멀리서도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무슨 말을 해요. 자식 잃어버린 죄인인데…무슨 말을 해요."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경찰이 지표투과레이더 등 장비를 이용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경찰이 지표투과레이더 등 장비를 이용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경찰 얼굴 보고 싶다" 분통도 

김씨와 동행한 다른 유가족들은 당시 부실했던 경찰 수사에 분통을 터트렸다. A양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A양의 고모는 "지난 30년 동안 가족들 모두가 폐인처럼 살아왔다. 당시가 암울한 시대라고 해도 살인 사건을 단순 가출로 취급해 수사할 수 있느냐"며 "당시 수사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힘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을 위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해달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경찰, 지표투과 레이더 등 동원해 현장 수색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이 공원 일대 3600여㎡를 대상으로 A양의 유골을 찾기 위한 발굴작업에 착수했다. 이 공원 일대는 A양이 실종 당시 입고 있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 등 유류품들이 발견된 야산이 있던 곳이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경찰이 지표투과레이더 등 장비를 이용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연합뉴스]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A공원에서 경찰이 지표투과레이더 등 장비를 이용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춘재가 유류품과 함께 A양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한 곳과는 100여m가량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춘재가 지목한 곳은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발굴작업이 불가능하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데다 이춘재가 진술한 유기장소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유골 발굴이 쉽지 않다. 그러나 경찰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살피겠다"며 수색을 결정했다.

경찰은 경력 120여명과 지표투과 레이더(GPR) 3대, 금속탐지기 등이 투입해 공원을 수색했다. 지표투과 레이더는 초광대역(UWB) 전자기파를 발사해 1.5 ~3m 아래의 내부 구조물을 탐지하는 비파괴탐사기구다. 지표투과 레이더가 지난 곳 중 특이사항이 발견된 곳엔 빨간 깃발을 꽂아 표시한 뒤 별도 발굴 작업 등을 벌일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색이 끝나고 깃발로 표시한 곳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거쳐야 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화성=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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