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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의 한가한 ‘왕조’ 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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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지난달 중순 도쿄 시내 호텔에서 열린 ‘2019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는 지상파 TBS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최고의 신인들을 모시려는 12개 구단의 경합이 뜨겁게 전개됐다. 160㎞대 직구를 내리꽂는 ‘레이와(令和)의 괴물투수’ 사사키 로키(佐々木 朗希)를 놓고는 4개 구단이 경합했다. 결국 제비뽑기에서 이긴 롯데가 교섭권을 거머쥐었다. 사사키와 함께 ‘빅2’로 꼽혔던 투수 오쿠가와 야스노부(奥川恭伸)에 대한 교섭권은 요미우리·한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야쿠르트가 확보했다.

드래프트는 야구인과 팬들의 축제였다. 각 구단의 1차 지명 선수가 호명될 때마다, 제비뽑기로 승자가 결정될 때마다 전국이 들썩댔다. 긴장감 속에 TV를 지켜보는 선수와 팬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전달됐다. 선수들과 가족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특집 방송도 편성됐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과의 약속을 지킨 형의 이야기, 어려움 속에서도 뒷바라지한 부모의 스토리다. 드래프트 뒤 2주가 흐른 요즘엔 교섭권을 확보한 구단의 감독이 학교로 선수를 찾아가 “꼭 함께 뛰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TV에 자주 등장한다.

글로벌아이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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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지명에 나라 전체가 열광하는 건 프로야구 못지않은 아마야구의 인기 때문이다. 전국 4000여개 팀 중 예선을 통과한 50개 팀만 밟을 수 있는 고시엔 무대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다. ‘봄 고시엔’(선발고교야구대회)과 ‘여름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전 경기를 NHK가 생중계한다.

탄탄한 아마야구의 저변 속에서 프로야구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 관중 수는 역대 최고인 2653만명, 경기당 평균 관중(3만929명)도 처음으로 3만명을 넘었다.

올 시즌 관중이 728만명으로 작년보다 10%, 재작년의 840만명보다 110만명 넘게 빠졌다는 KBO리그의 부진과는 대조적이다. 지방 인기 구단의 몰락과 스타 부재가 원인이라고 한다.

아마야구 대표팀은 최근 중국에 2번이나 졌다. 그래서 한국은 도쿄올림픽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런데도 야구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은 잘 보이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싱겁게 끝난 올해 한국시리즈의 우승팀에 대해 ‘왕조가 맞느냐 틀리냐’ 운운하는 기사들을 봤다. 팬들이 모이지 않는 스포츠에 ‘왕조’나 ‘전설’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그리고 일본에선 소프트뱅크가 재팬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지만, ‘왕조’란 표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표현이라도 아무 때나 쓰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