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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골레토는 몰랐다, 딸이 '그 놈'과 사랑에 빠질줄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4)

일반적인 가정에서 아버지는 대화나 소통에 서툴고 또 다소 비켜나있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 또는 여자에 비해 남자는 논리나 문제해결에 집중하며 따라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완고함, 더 나아가 가족간의 소통 부족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 사건이 종종 보도되기도 하지요.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리골레토'. [사진 국립오페라단]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리골레토'.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가 1851년에 발표한 '리골레토'는 바람둥이를 연모한 순정파 딸과 딸 보호에 집착하는 장애인이자 광대인 아비간의 소통 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부녀간 사랑의 화살표는 엇갈리게 되고, 결국 딸을 유린한 바람둥이에게 복수를 하려 한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딸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결국 '리골레토'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부녀간의 비극을 작곡가 베르디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한 오페라지요.

빅톨 위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리골레토'에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이 나옵니다. 오늘은 이 여인, 또 내일은 다른 여성과 쾌락을 즐기려는 사람입니다. 등이 굽은 광대인 리골레토는 주군인 공작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한답니다. 공작이 원하면 귀족의 부인이든 딸이든 가리지 않고 연결하지요. 그러면서도 공작을 부도덕하다고 경멸합니다. 낄낄대면서 말이지요.

그런 리골레토에게 숨겨진 딸, 질다가 있습니다. 귀한 딸이 행여나 잘못될까를 걱정하여 과하게 통제하던 리골레토는 공작이 자신의 귀한 딸을 유린했을 때, 결국 ‘낄낄대던 방관자’ 입장에서 ‘증오의 당사자’가 되어 복수를 결심하지요. 허나, 순수한 사랑을 움켜 쥔 질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리골레토의 비극이 완성된답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부녀간의 비극을 작곡가 베르디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했다. [사진 Flickr]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부녀간의 비극을 작곡가 베르디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했다. [사진 Flickr]

비극을 암시하는 암울한 전주 음악이 흐른 뒤 막이 열리면, 만토바 궁정의 파티에서 공작은 어떤 여자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며 자신의 여성관을 뻔뻔하게 노래합니다. 딸의 정조를 유린당한 몬테로네 백작이 항의하자, 리골레토가 나서서 공작을 비호하며 그를 조롱합니다. 백작은 “아비의 아픔을 비웃는 자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종교에 충실한 그들에게, 신의 은총을 빼앗는 저주는 공포스럽지요. 리골레토는 마음이 찜찜하지만, 아직은 철저한 방관자랍니다.

아빠가 하는 일도 모르는 질다는 완고한 그의 뜻에 따라, 집에서만 생활하며 단지 주일에 교회에만 갈 수 있답니다. 언제나 청춘의 피는 뜨겁기 마련이지요. 교회에서 만난 멋진 청년이 질다의 눈에 아른거립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녀가 경험 많고 멋진 오빠를 만날 때, 비극은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학생이라 소개한 그 오빠는 사실 만토바 공작이었고, 집을 찾아온 그는 질다에게 열정적인 사랑 고백을 합니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아쉽게 헤어진 뒤, 질다는 유명한 아리아 ‘그리운 이름이여’를 부르는데 청아한 플룻 연주를 따라서 콜로라투라 기법의 멋진 아리아랍니다. 결국 질다는 철학자 헤겔이 “사랑이란 나를 버리고 상대에 빠지는 것”이라 한, 그런 절대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그런데 질다는 궁정 대신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공작은 그녀의 사랑을 짓밟고 유린합니다.

질다를 찾으러 궁정에 온 리골레토는 대신들을 저주하며 딸을 내놓으라고 흥분합니다. 하지만 딸을 구하고자 하는 아비는 점차 눈물을 흘리고 마침내 자비를 구하듯 간청하며 애타게 노래합니다. 그러던 중에, 질다가 옷 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공작의 방에서 뛰어 나오다가 아버지를 발견하곤 울면서 그의 품에 안깁니다. 아버지가 광대임을 알게 된 딸과, 딸이 능욕당한 모습을 발견한 아비. 신을 원망하는 리골레토는 울부짖으며 공작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이제 그도 처절한 당사자가 된 것이지요.

한편 공작은 오늘 술집에서 또 다른 여성에게 수작을 걸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때 부르는 테너의 유명한 아리아가 바로 ‘여자의 마음’이랍니다. 리골레토는 그 장면을 질다에게 보여주며 공작의 거짓된 사랑을 폭로합니다. 자신에게 했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을 반복하는 공작의 모습에 질다는 큰 충격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합니다. 아버지에게 그를 용서하라고 호소합니다.

분노에 휩싸인 리골레토는 질다를 피신시켜 놓고, 킬러를 고용하여 공작을 암살하고자 하지만, 질다는 자기방식대로 공작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리골레토가 잔금을 치르고 킬러로부터 건네 받은 시신 자루를 열자, 피에 젖은 질다가! 질다는 공작을 대신하여 스스로 킬러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딸을 위해 복수의 칼을 샀건만, 그 칼을 사랑하는 내 딸이 맞다니… 결국 “공작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속였다”는 질다의 죽음 앞에서, 리골레토의 “저주로구나!”라는 절규가 밤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너의 복수를 위한 칼이 너를 죽였구나" 리골레토의 절규. [사진 Flickr]

"너의 복수를 위한 칼이 너를 죽였구나" 리골레토의 절규. [사진 Flickr]

왜 질다는 공작의 본색을 확인하고도,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에게 수작부리는 못된 남자를 위해 죽는 겁니까? 왜,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약한 건지요? 왜 대신 죽으면서까지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이 어리석긴 합니다. 사랑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알듯이, 어디 남녀의 사랑이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던가요?

오페라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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