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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인싸] 의원 정수 확대 vs. 지역구 축소, 뭐가 더 힘들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진지하게 다시 머리를 맞대는가 싶더니 최근 의원 정수 문제로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발단이 된건 지난 27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의원정수 10% 확대” 주장입니다. 심 대표는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까지 여야5당이 함께 합의했던, 현행 300석에서 10%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그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비례대표 없애고 의원 수 줄이자” # “지역구 줄이거나 의원 수 늘리자” # 의원 정수 둘러싼 정치권 동상이몽 # 선거법ㆍ공수처법 얽혀 셈법 복잡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가짜뉴스” “허언증”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심 대표가 드디어 밥그릇 본색, 배지 욕심을 드러냈다”며 “권력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 정치 허언증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비열하고 비겁한 정치공작”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당이 펄쩍 뛰는 건 ‘나 원내대표까지 여야 5당이 함께 합의했던’이란 대목입니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합의문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과 함께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미일까요? 또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등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는 문구 속의 ‘합의’가 한국당의 물리적 저항과 거부 속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되고 정개특위에서 처리된 것까지 포함할까요?

둘 사이 이견은 멀고도 멉니다. 또 그럴만큼 의원정수는 민감한 문제기도 합니다. 의원 한 명 한 명의 정치적 생명이 걸려섭니다. 여야4당의 선거법은 패스트트랙 절차 상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고 그 후 60일 이내에는 반드시 표결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민주당은 그 전까지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정당들과 최대한 합의를 도출해본다는 계획이지만 워낙 입장 차가 극명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선거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여야 교섭단체 회동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유의동 바른비래당 의원,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김종민 민주당 의원, 김재원 한국당 의원,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 변선구 기자

선거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여야 교섭단체 회동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유의동 바른비래당 의원,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김종민 민주당 의원, 김재원 한국당 의원,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 변선구 기자

◇10% 확대냐 축소냐=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연동해서 선거에서 나타난 정당 투표 결과대로 의석이 골고루 배분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A정당이 전국적으로 10% 지지율을 얻었다면 300석의 10%인 30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만큼 지역구에서 얻지 못했다면 부족한 만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개념입니다. 현행 지역구 의석수(253석)를 유지하면서 제대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다면 의석수 증가는 불가피합니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지난 4월 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합의하면서 현실적으로 의석 수를 늘리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00석을 유지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려면 지역구를 줄이고(253석→225석) 연동률도 50% 수준으로 낮추는 게 최선이라고 본 겁니다.

그런데 의석수를 늘리기도 어렵지만 줄이기도 어렵습니다. 전자가 국민의 부정적 여론 때문이라면, 후자는 의원들의 저항이란 현실적 어려움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군소야당 진영(바른미래당 호남계, 민주평화당, 평화당 탈당파인 가칭 대안신당 등)은 다시 10%이내 확대를 주장합니다. 현 의원정수가 300석이니 30석이겠군요. 반면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고 지역구 의원만 270명을 뽑자고 합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은 오히려 국회의원 숫자를 더 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정치인을 내 손으로 직접 뽑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987년 이후 역대 국회 의석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987년 이후 역대 국회 의석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로에 선 민주당= 심 대표는 지난 27일 의원정수 확대 가능성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의지도 변수”라고 말했습니다.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문에는 향후 본회의 표결 순서를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순으로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여야4당의 개혁공조 강화를 위해 의원정수 확대를 포함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민주당의 당론은 “현행대로”(300석)가 당론이지만 “의원 정수 확대 역시 논의해 볼 필요는 있다”는 식의 개인 의견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사실 의원 정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역구 1석을 줄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1987년 이후 국회의원 숫자는 대개 299명을 유지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선거였던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라’는 거센 여론에 떠밀려 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인 적이 있습니다. 300석 시대는 2012년 19대 국회 때 열렸습니다. 그 사이 지역구 의석 수를 줄이기 어려우니 대신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였습니다. 13대 국회에서 75석이었는데 20대에선 47석이 됐습니다.

일각에선 지역구를 줄이는 것보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더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선거법은 결국 의원들이 투표해 통과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법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현재로선 의원 수를 대폭 줄이거나 늘리는 방향의 합의는 어렵다고 본다”며 “한국당과 정의당 모두 거부할 수 없는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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