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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에 이런 맛이? 텃밭 가꾼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 라이프(13)

프랑스 배우 ‘멜라니 로랑’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내일’에서는 지금의 어린 세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희망적인 대안을 보여준다. 그중 영국의 작은 마을 ‘토트모던(Todmorden)’에서 시작한 텃밭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놀라운 먹거리 프로젝트(Incredible Edible Project)’라 불리는 공유 텃밭은 주민 두 명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역 주변과 학교, 주차장, 경찰서, 우체국, 개들이 소변을 보던 화단은 먹을거리들이 풍성하게 열리는 텃밭으로 바뀌었다. 마을 어디를 가도 주민들이 먹을 수 있는 작물이 자라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 '내일'에서 소개하는 '토트모던' 마을의 공유지 텃밭.

다큐멘터리 '내일'에서 소개하는 '토트모던' 마을의 공유지 텃밭.

이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두어 영국 내 여러 지역으로 퍼졌는데 우리가 지내던 런던 북부의 ‘머스웰 힐(Muswell Hill)’ 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 앞 공유지를 마을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텃밭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른 저녁 아이들과 함께 채소를 따러 나오는 가족이나 노부부들, 젊은 청년들을 볼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퇴근길에 들리는 아저씨도 보았다.

마을 공유지 텃밭으로 주민들의 소통과 연대가 되살아났다. [사진 Incredible Edible Network 웹사이트]

마을 공유지 텃밭으로 주민들의 소통과 연대가 되살아났다. [사진 Incredible Edible Network 웹사이트]

최근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연구진 70여 명과 자문단 120명이 기후 위기 대책을 발표했다. ‘플랜 드로다운’이라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은 인류에게 기후 위기로 인해 가장 주된 위험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보고서에도 텃밭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집 정원을 텃밭으로 이용하기를 권장했고, 당시 식량의 40%를 공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냉장고가 보급되기 전까지 텃밭은 가정의 자연 냉장고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자연의 다양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귀한 자원이었다. 이웃에게 나누어 줄 채소가 생기고 서로 바꿀 수 있다. 자연이 주는 놀라운 경이로움을 집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남은 음식물을 다시 텃밭으로 되돌리는 선순환이 된다.

우리도 집의 빈터를 이용해 작은 텃밭 가꾸기에 도전했다. 손질 후 남은 채소와 과일 껍질 등 집에서 나오는 남은 음식물을 흙과 함께 2주 정도 섞어 두니 좋은 거름이 되었다. 다시 텃밭에 뿌려주어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순환되는 텃밭에는 거미가 자리를 잡고 날벌레를 잡고 있었고, 농부들께 받은 채소에서 나온 애벌레들이 나비가 되기도 하고 이름 모를 날 것들이 되기도 했다. 우리도 모르게 한 계절이 지나니 텃밭은 작은 생태계가 되어 있었다.

작은 텃밭에서 자연이 주는 감사한 선물을 맛볼 수 있었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작은 텃밭에서 자연이 주는 감사한 선물을 맛볼 수 있었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텃밭을 잘 가꾸려면 손이 많이 간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지만 텃밭에 처음 도전한 우리는 최대한 자연에 맡겼다. 어떤 작물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어떤 작물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유난히 잘 자라준 방울토마토는 먹어도 또 열리기를 반복하며 여름 내내 많은 토마토를 내어주었다. 우리가 키운 기쁨의 맛도 더해져서 토마토의 맛은 남달랐다.

이런 순환 시스템으로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방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물 쓰레기가 거름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거름이 만들어지는 동안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동물성 재료가 없으니 거름통에 코를 대고 맡아야 시큼한 향이 날 정도다. 주변에 날아든 날벌레는 어디서 찾아왔는지 알 수 없는 거미들이 해결했다. 텃밭을 가꾸어보니 자연에 대한 감사, 농부님들에 대한 존경이 깊어진다. 요즘은 베란다나 옥상 텃밭, 주택 집의 화단 텃밭 등 가벼운 마음으로 텃밭 가꾸기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되어 있다. 모종이나 텃밭에 필요한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런던 파머스 마켓에서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파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밭에서 기르고 나눌 수 있는 채소는 착한 가격에 주민들과 나눈다. 집 화단에서 가꾼 꽃이나 들에서 꺾어 온 들꽃을 파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렇게 내 지역에서 가까운 농산물을 이용하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먼 거리로 긴 시간 이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해진다. 지역 농부를 도울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좋은 선택이다.

런던에서 자주 갔던 파머스 마켓은 마을 초등학교에서 주말마다 열렸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주말 아침을 시작하는 즐거운 이벤트처럼 보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장을 보는 모습이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작은 마을 시장에서도 비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맛있는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학교 뒷마당에 앉아 이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보고 간단한 요리를 하며 현지인처럼 살아본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보고 간단한 요리를 하며 현지인처럼 살아본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간 마을 장터가 퍼지고 있다. 서울에는 혜화, 성수, 홍대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가 대표적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농부의 땀과 노력을 만날 수 있다. 농부들께 채소와 작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고 마트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제철 채소들도 볼 수 있다. 이런 지역 장터가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퍼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히나 도심에서는 마트에 의존해야 하는 장 보기에서 농부님들을 직접 만나 좋은 농산물을 선택할 기회가 절실히 필요하다.

텃밭 도전은 먹을거리 생산과 단절되었던 우리의 뇌세포를 깨워주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 조상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기르고 요리하고 나누며 살았다. 요즘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나뉘고 요리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요리도 농사도 전문가의 영역이 되었다. 어쩌면 그 결과 우리는 더 많은 돈과 건강, 자연,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 등을 잃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우리는 도시에서 스스로 갇힌 삶을 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텃밭에서 얻은 채소로 감사한 식탁을 차린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텃밭에서 얻은 채소로 감사한 식탁을 차린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로 식사하는 저녁, 아이들은 직접 기른 채소를 더 맛있게 먹는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뿌리를 만지며 물을 주었던 생명이 다시 결실을 안겨 준다. 자연에서 얻은 기쁨으로 식사를 하는 즐거움은 우리가 누리는 값진 호사다. 자연이 가져다준 잔잔한 감동은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좋은 생각을 심어준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감사한 텃밭의 힘이다.

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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