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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경제가 부진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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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3분기 성장률(0.4%)은 쇼크다. 올해 2% 성장은 어려워졌다. 위기 때 말고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저성장이다. 이쯤 되면 정부도 속이 터져야 정상이다. 대통령이 기업 현장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역대 최대 규모로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데 경제가 도리어 기운을 잃고 있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부는 그 이유를 주로 미·중 무역 분쟁 등 외부 여건 악화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과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제가 가라앉는 데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 있어 보인다.

1%대 성장 쇼크 기정사실화 #시장경제 마인드 결핍이 문제 #정부, 외부 탓 말고 반성부터

우선 정권의 시장 몰이해 혹은 시장경제 마인드 결핍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병을 요약하면 민간의 활력 실종이다. 민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6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투자 부진은 자본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의미한다. 자본은 수익을 좇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법인세 인상 등 자본의 수익 창출을 어렵게 만드는 정책들이 잇따라 취해졌다. 그것도 경기가 꺾이는 시기에.

주 52시간제는 근로자 1인당 노동 시간을 제한한다. 산술적으로 종전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근로자를 투입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급등에 발목이 잡혔다. 어렵사리 수익을 내도 세후 수익은 예전만 못하다. 법인세 인상 때문이다. 결국 몸을 사리는 자본이 많아졌고, 그 현상이 투자 부진이다. 이는 생산 위축과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 특히 주 52시간제는 근로자들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하게 막고, 사업주가 임금을 더 지급해서라도 일을 더 시키려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

서소문 포럼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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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에 대한 과잉처벌도 투자 의욕을 저하시킨다.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사업할 맛이 떨어진다”고 꼽는 이유 중 하나다. 이를테면 주 52시간제를 어기면 사업주를 2년 이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0개 경제·노동·환경법 벌칙조항 중 88%가 대표이사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갖고 있다. 기업에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정도의 문제다. 사업주를 직접 타깃으로 하는 처벌 조항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질지 몰라도 사업주 입장에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 같은 리스크를 안고 경영하는 셈이 된다. 기업인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분양가상한제로 대표되는 반(反)시장경제적 정책도 시장을 골병들게 한다. 가격을 억누르기 위한 정부의 직접 규제는 공급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시장의 정설이다. 이에 따른 건설경기 위축은 일자리 감소는 물론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연결된다. 정권 마음대로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좌우하는 일련의 정책은 경제가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길 기대하는 기업인들을 좌절시킨다. 이러니 정부의 투자 확대 호소가 제대로 먹힐 리 없다.

무분별한 재정 확대도 경제 활력을 갉아먹는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금 살포식 재정지출이 부처 간에, 지자체 간에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고 포퓰리즘의 선두에 섰던 베네수엘라 경제가 왜 파탄 났겠는가. 포퓰리즘의 만연은 재정 파탄을 부르고, 공짜심리를 확산시켜 시장경제를 망가뜨린다.

정부의 자기합리화와 변명은 도를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대로라면 올해 한국과 세계경제 성장률(3.0% 예상) 차이는 약 1%포인트나 벌어진다.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대다. 2%대 중반 성장을 낙관하던 관료들의 말이 어느 순간 달라졌다. 비교 대상을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으로 삼고, 경제가 성숙해 성장세가 둔화한 선진국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한다. 과거에 볼 수 없던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역대 정부는 기준점이 달랐다. 고도성장이 막을 내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세계 성장률을 밑도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있었다.

통렬한 자기반성이 없는 것이 현 정부의 진짜 문제다. 한국 경제는 숱한 외부 여건 악화를 극복하고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 위기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