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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에 힘내라? 골절 환자한테 걸으라는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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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음의 감기, 우울증 ② 

우울증 치료기를 담은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씨

우울증 치료기를 담은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씨

백세희(29)씨는 우울증을 오래 앓아왔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담은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를 냈다. ‘볼 사람만 볼 책’이라 생각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2000부만 찍어냈던 책은 1년4개월 만에 4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백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줄은 몰랐다. ‘내 일기장인줄 알았다’는 댓글에 감격스러우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우울증이라는게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 해 우울증을 앓는 환자는 61만명, 경기 안양시 인구(57만명)보다 많은 숫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걸리는 흔한 병인데도 누구도 큰 소리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백씨는 책을 통해 우울증도 병이라는 당연한 진실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우울증을 커밍아웃 하는 이들이 늘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작가 백세희 #우울증 병인줄 모르고 10년만에 본격 치료 #항우울제 복용하고 무기력 이겨내 #불이익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백씨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 몰이해에 대해 언급했다.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에게 감정은 자기 의지로 조절되는게 아닌데도 세상 사람들은 쉽게 “마음 단단히 먹어라”는 식의 가짜 위로를 던진다는 것이다. 백씨는 “앨릭스 코브의 책 『우울할 땐 뇌과학』에 ‘우울증은 뇌의 생각하는 회로와 느끼는 회로가 잘못 작동해 생기는 문제’라는 대목이 나온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조언하는 건, 뼈가 골절된 사람에게 열심히 걸어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백씨가 겪은 우울증은 단순히 우울하기만 한게 아니었다. 감정의 진폭이 컸다. 어떤 날은 평범하게 보냈지만 어떤 날은 ‘그만 살아도 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동료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기분이 바닥에 닿아 입을 다무는 날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불현듯 치민 우울에 홀로 소리내 울기도 했다. 이유없이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우울증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드는건지 알 수 없었다. 백씨는 “병인줄 모르고 내가 나약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보니 10년 이상 앓고서야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우울증 환자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각지대에 놓인 우울증 환자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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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여러 증상 중에 백씨를 가장 괴롭힌 건 무기력이었다. “우울증이라 하면 흔히 우울하고 슬프기만 할거라 생각하는데 제일 무서운 증상은 무기력이에요. 예전에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누워서 잠만 20시간씩 자고 그런 때도 있었어요. 회사 일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가 없죠. 그러면 못한 일에 대한 자책감이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더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어요. 우울의 챗바퀴인거죠.”

그는 “세상에 반짝거리는, 관심가는 것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가 아니라 ‘더 이상 하고 싶은게 없어서 그만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 사고(생각)이 심해져서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계획까지 갔다. 유서를 쓰고 퇴고도 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방법도 구상했다”고 했다. 그러다 “이러다가 안되겠다는 생각에 찾은 곳이 병원(정신건강의학과)이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병원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치료를 받게됐다. 굉장히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3년째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백씨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있다. 상담도 2주~한달에 한번 정도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극단을 오가던 감정의 진폭은 잦아들었고, 일상을 좀 먹던 무기력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나의 우울증 위험은 얼마? 스스로 진단해보세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나의 우울증 위험은 얼마? 스스로 진단해보세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의 바람은 소박하면서도 간절하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숨을 쉬듯 당연하게 병원을 찾고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은 더는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는 상처와 비슷한 무게로 여겨지는 날이 꼭 오면 좋겠습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황수연·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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