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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서울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약속 4년 헛발질…조국 일가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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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영화 ‘기생충’ 주인공들이 화장실 변기 옆에 앉아 무료 와이파이를 찾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주인공들이 화장실 변기 옆에 앉아 무료 와이파이를 찾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을 보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의 아들(최우식 분)과 딸(박소담 분)이 이웃집 사람들의 와이파이를 도용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잡히는 화장실 변기 옆에 웅크린 장면이 나온다. '데이터 거지'나 '와이파이 난민'이란 말이 회자하는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조국 일가는 왜 서울지하철 통신복지 사업에 거론되나] #박원순 "100배 빠른 통신 복지" 공약 #사업자 선정 못하고 4년 허송세월 #조국 조카 조범동 측 사업권 관심 #"조국 민정수석 임명 당일 찾아와" #"사업권 노리다 안 되자 훼방 놔" #서울시·교통공사는 의혹 밝혀야 #방치하면 감사원과 검찰 나서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말처럼 'DT(데이터 기술) 시대'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통신을 가능케 하는 데이터가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한 생필품이다. 문제는 데이터가 비싸다는 점이다. LTE에서 5G로 통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통신사의 투자비는 증가하고 덩달아 소비자의 데이터 비용 부담이 커진다.
 통신 3사에 따르면 데이터 무제한 가입자는 약 30%뿐이고, 나머지 70%는 무료 와이파이가 절실한 '데이터 빈곤층'이다. 돈 있는 사람은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통신료 부담이 커져 데이터를 충분히 쓰지 못하는 불평등, 즉 '데이터 디바이드(Divide·소외)'가 심각하다. 이제 복지는 단순한 생계 지원 차원을 넘어 '통신 복지'가 매우 중요해졌다.

대대적 홍보해놓고 해명도 없어
 이런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한 서울시는 2015년 11월 '지하철 통신 서비스 수준 향상 계획' 차원에서 기존 통신 3사보다 100배 빠른 지하철 무료 공공 와이파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홍보했다. 이듬해 1월 서울시는 지하철 1~9호선 역사와 전동차에 와이파이 시스템을 구축해 2017년 1월 4, 8호선에서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같은 해 10월부터 모든 노선으로 확대할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디지털 2020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17년에 지하철과 버스를 비롯해 서울 전역의 공공장소를 무료 와이파이 존으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6월 지방 선거 당시 지하철을 타고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시민들에게 무료 와이파이 통신복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4년째 불발 상태다. [중앙포토]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6월 지방 선거 당시 지하철을 타고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시민들에게 무료 와이파이 통신복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4년째 불발 상태다. [중앙포토]

 하지만 약 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실망스럽다.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사업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지난 5월 이후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런데도 지난 7일 서울시는 "2022년까지 3년간 1027억원을 투입해 스마트 서울 네트워크(S-NET)를 추진한다. 서울 전역에 무료 공공 와이파이를 설치해 통신기본권을 전면 보장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은 쏙 뺐다. 시민들로선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년간 입찰 5회, 업체 선정조차 못 해
 서울시가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사업에 착수한 지 약 4년, 2016년 4월 1차 입찰부터 올해 5월 PNP 플러스(이하 PNP)와의 계약 해지까지 따지면 3년 6개월간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사업을 둘러싸고 무슨 사달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하철 와이파이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연루 의혹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2016년 4월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 이하 교통공사)는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 입찰공고를 낸다. 3차 입찰에서 경쟁자인 PNP를 누르고 SWP가 1순위 업체로 뽑혔다. 하지만 PNP 측이 이의를 제기하자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평가 오류를 지적하며 재평가를 주문했지만, 교통공사는 입찰을 취소해버렸다.
 입찰 과정을 잘 아는 기업인 A씨는 "당초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은 공익사업으로 추진했는데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서울시 내부의 386 세력을 동원해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SWP는 실력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졌다"고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9월 5차 입찰에서 PNP가 1순위로 평가되고, 기술검증과 서비스 품질 평가를 거쳐 2018년 2월 교통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또 발생한다. PNP 퇴직자 10여명이 줄줄이 "체불 임금을 돌려달라"며 PNP가 교통공사에 맡긴 입찰 보증금에 가압류를 신청하면서 PNP의 자금 동원력이 의문시됐다. 또 기술 검증을 위해 교통공사가 2018년 말 기간통신사업자 면허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급받아오라고 PNP에 요구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5월 초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이에 반발한 PNP는 계약 해지 무효 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A씨는 "PNP의 기술력과 자금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바람에 몇 년을 허비했는데도 아무도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PNP의 계약을 둘러싸고 뭔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투자 거부하자 오히려 사업 훼방"
 서울시가 2015년 11월 와이파이 사업 추진 방침을 정한 두 달 뒤에 조국 일가가 투자한 사모펀드의 운용사인 코링크PE(이하 코링크)가 서울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1500억원 규모) 참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6년 2월 코링크가 PNP와 사업 유치 및 투자 유치 계약한 지 두 달 뒤에 1차 입찰이 이뤄졌다.

코링크PE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서울 지하철과 버스 와이파이 사업 참여 구상.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코링크PE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서울 지하철과 버스 와이파이 사업 참여 구상.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이런 의혹에 대해 서재성 PNP 대표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주장을 폈다. 그는 "기술력과 자금 동원에 문제가 없었는데 계약 해지 책임을 PNP에 떠넘겼다"고 반박했다. 특히 조국 전 장관의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절에 PNP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PNP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서재성 대표와의 문답.

 -코링크(조국 일가 펀드 운용사)와의 관계는.=

 "2015년 하반기쯤 익성(자동차부품 업체) 상장을 준비하던 코링크 측 조범동(조국 5촌 조카, 수감 중)씨 등을 소개받아 서울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설명해줬다. 익성과 코링크가 서울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에 참여를 희망해 2016년 1월 PNP 설립 당시 자본금 2억5000만 중 7000만원을 투자했다."

 -코링크와는 왜 틀어졌나.=

 "코링크 측이 적법과 탈법을 넘나드는 투자유치 방안을 수차례 제안했다. 10억~20억원의 종잣돈을 넣은 뒤 유상증자 과정을 통해 10~20배로 자금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경영권을 행사할 정도의 지분(40% 이상)을 코링크에 넘겨주면 이후 과정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내가 거부하자 관계가 틀어졌고, 익성과 코링크 측에 투자금 전액(7000만원)도 2017년 1월 모두 반환했다."

 -그 이후에는 만남이 없었나.=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조국 수석 임명 당일인 2017년 5월 11일 조범동씨가 나를 다시 찾아와 PNP가 사업자에 선정될 경우를 전제로 탈법적인 자금조달 방안을 또 제안했다. (※당시는 SWP에 낙찰된 3차 입찰이 이미 취소된 상황) 실제로 5차 입찰에서 PNP가 우선협상자가 되자 12월에 코링크 측이 또다시 찾아와 100억원의 투자의향서를 제시했지만 거부하고 관계를 단절했다. 코링크의 행태를 보니 그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면 나중에 내가 모든 책임을 질 것 같아서 피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모펀드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중앙포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모펀드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중앙포토]

 -코링크는 왜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갖고 싶어 했나.=

 "2017년 9월 PNP가 사업자로 선정됐고 11월에 코링크가 코스닥 상장사 WFM을 인수했다. 코링크 입장에서는 WFM과 PNP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묶으면 기업 공시만 해도 주가가 폭등해 앉아서 대박을 칠 상황이었다.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먹는 게 조범동씨의 목적이어서 내가 거부해도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코링크가 계약 해지에 영향력을 행사했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다.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갖고 싶었던 세력들이 자기들 뜻대로 안 되니 계약이 취소되도록 훼방했을 것이다. 내가 적당히 타협했다면 사업이 굴러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게이트(권력형 비리)에 걸려들었을 수 있다. 계약 해지한 게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천운이었다."

서울시·교통공사, 의혹 낱낱이 밝혀야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사업이 사실상 무산되는 과정을 돌아보면 입찰 파행과 이전투구가 계속 벌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사업자 선정 절차라고 보기 어려운데 의혹은 방치돼 있다.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사업은 당초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안됐는데 중간에 민간투자사업으로 변질됐다. 박원순 시장은 이 사업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통공사 미디어실 관계자는 "문제가 제기돼 계약을 취소했을 뿐 외압이나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종합적 정책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 이용 부담을 덜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4년째 사업자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 이용 부담을 덜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4년째 사업자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무산된 지하철과 달리 KT가 서울 시내버스에서 무료 와이파이 사업을 시작했다. 장세정 기자

무산된 지하철과 달리 KT가 서울 시내버스에서 무료 와이파이 사업을 시작했다. 장세정 기자

 하루에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은 1000만명.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지하철 와이파이 사업을 계속 추진할지, 중단할지 시민들에게 책임 있는 설명부터 하고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사원과 검찰이 나서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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