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의 고백 "나는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버틴다"

중앙일보

입력 2019.10.28 00:05

업데이트 2019.10.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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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음의 감기, 우울증 ①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수원=최승식 기자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수원=최승식 기자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은 선진국형 외상센터를 추구하면서 지난 17년간 내·외부의 난관을 돌파해 왔다. 그는 깨지고 또 일어나서 부딪친다. 하지만 “더 이상 못하겠다”고 호소한다. 거대한 장벽들이 여전히 그를 짓누른다. 이 교수는 “항상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우울의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다음은 이 교수의 우울증 투쟁기다.

“웬만한 일 퉁치고 넘기려 노력
정신과 진료, 항우울제 먹기도”

이국종 교수 ‘내가 겪는 우울증’
중증외상센터 만드느라 스트레스
17년간 겪은 참담한 일들의 연속
항우울제 처방, 음악 들으며 위안
작은 것서 행복 찾으며 버텨나가

인생 여정의 99%가 비극의 연속이라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인생은 비극으로 종료된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이 세간에 있지만 순간 용기를 내도 인생은 어차피 실패에 가까운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게 인생이다. 가족이 모인 가운데 행복하게, 아무런 고통조차 느끼지 않으면서 잠들 듯 편안하게 죽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가 만든 거짓말이다. 차라리 심각한 중증외상으로 인해 삶과 죽음을 느낄 시간조차 없는 찰나의 죽음이 행복할 수도 있다. 너무나 좋은 선진국 국민조차도 높은 우울증 발병률에 시달린다.

2004년 브라이언 올굿 주한(駐韓) 미 육군 의무사령관과 그의 주임원사 리카르도 알칸트라가 우리 병원을 찾았다. 올굿 대령은 한국을 떠난 뒤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구내식당 반찬 맛있네 … 소소한 일에 감동하며 우울 견뎌” 

이국종 교수가 '내가 겪는 우울증'을 쓰기 위해 뼈대를 잡아놓은 메모장. 응급의료 관련 지방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작성했다고 한다. 수원=최승식 기자

이국종 교수가 '내가 겪는 우울증'을 쓰기 위해 뼈대를 잡아놓은 메모장. 응급의료 관련 지방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작성했다고 한다. 수원=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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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트라가 지난달 한국을 다시 찾아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서 ‘브라이언 올굿 기념병원’ 개원 기념사를 했다. 그는 올굿 대령이 가장 많이 쓴 말을 소개했다. ‘그렇고 그렇다. 어차피 일어난 일인데 훌훌 털고 넘어가자(It is what it is)’였다. 외과의사로서, 미 육군 군의관이자 고급 장교로서 세계의 전장에 투입됐던 그가 자아를 보호한 말이었다. 전사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은 죽으며, 이름조차 세상에 남기건 못 남기건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게 우울한가?

2008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더 이상 우울할 수가 없었다. 병원 보직교수는 “여기가 영국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외상외과를 배우고 왔을 때도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라고 했었다. 보직교수는 “이 선생, 이제 좀 적당히 해. 일단 수술은 하지 않았으면 해. 그게 과의 입장이야.” 그들은 이미 내 업무를 날려버리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였다. 참담한 일들이 두개골 속 대뇌에서부터 척추신경망을 타고 전신의 세포 말단까지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극도의 우울함을 넘어 마치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고, 구토가 올라왔다.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렸으며 멍하니 딴생각 하며 걷다가 자꾸 부딪치거나 발을 헛디뎠다.

친구가 권한 항(抗)우울제는 효과가 없었다. 암을 치료하려면 병의 뿌리를 날려버려야 한다. 원인이 있는 상태에서 대증요법과 같은 약물치료만 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정신과 후배가 정신분석 결과지와 나를 번갈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요즘에 많이 우울하세요? 검사 결과가 좀….”

밀려드는 중증외상환자에 치여 지내면서 약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되는 각종 외압에 난 계속 우울했지만 그냥 최대한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담배를 끊지 못했다. 오직 음악이 휴식공간이 되었고 야구에 빠져 지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편안해하는 것이 최소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난 철저히 그런 것에 의지해 견뎠다. 직장에서 밥벌이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주변 상황 때문에 더 이상 우울해질 수는 없었다.

남의 인생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매우 행복하며 멋지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 우울한 종말이 찾아온다. 구내식당의 점심 반찬이 잘 나온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소소한 즐거움과 같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야 우울증을 간신히 견디기라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남들도 다 힘들다’를 생각하고 인생이 ‘그렇고 그렇다(It is what it is)’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울함도 감소한다.

우울한 감정이 위험만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지구 생물 중 사람만이 우울할 수 있다. 사색할 수 없다면 우울할 수도 없다. 우울한 시간은 사색과 미래 준비 시간일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은 스스로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면서 신파극을 써 나가는 것이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웬만한 일에는 ‘It is what it is’로 퉁치고 넘어가며,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감사하면서, 어딘가에서 자기를 위해 노력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아주 아주 바쁘게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한다. 그래야 우울증에 대한 불필요한 신파를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삶 자체가 우울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 가야 한다. 올굿 대령을 추모하며 알칸트라는 계속적인 우울함과 궁극적인 생과 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It is what it is.”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황수연·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최근 5년새 꾸준히 늘어나는 우울증 치료 환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근 5년새 꾸준히 늘어나는 우울증 치료 환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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