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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왜 저리 바쁜 걸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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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칼럼]   참새는 왜 저리 바쁜 걸까

‘콕, 콕, 콕’ 땅을 쪼는 참새떼

중국 당나라 때 남전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30세에 출가해 처음에는 교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계를 깨닫고 마조 선사의 제자가 됐습니다. 남전은 훗날 ‘무심선(無心禪)’으로 이름난 선사가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종종 ‘무심(無心)’을 이야기합니다. 없을 무에 마음 심. 그런데 ‘무심(無心)’이 과연 뭘까요.

어떤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텅 빈 마음”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떠한 잡념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주장을 듣다 보면 오히려 더 헛갈립니다. 도대체 남전 선사가 말한 ‘무심’은 무슨 뜻일까요.

가을 무렵이나 되었을까요. 하루는 남전 선사가 동료 스님과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당에 참새떼가 내려와 앉았습니다. 참새들은 계속 부리로 땅을 쪼아댔습니다. 요리조리 움직이며 콕, 콕, 콕 바닥을 쪼았습니다. 뭔가 먹을 걸 찾느라고 그랬겠죠. 그걸 바라보던 동료 스님이 말했습니다.

“아니, 어째서 참새는 저렇게 바쁜 겁니까?”  

그 말을 들은 남전 선사의 반응이 참 뜻밖이었습니다. 남전은 갑자기 자신의 신발을 훌러덩 벗었습니다. 그걸 들고서 땅바닥을 ‘탁! 탁! 탁!’ 세게 내리쳤습니다.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동료 스님이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스님, 왜 신발을 벗어서 땅바닥을 때리십니까?”

이 말을 듣고서 남전 선사가 답했습니다.

“바쁜 참새를 쫓으려고 그런다네.”

이야기는 여기가 끝입니다. 풀이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눈을 감고 당시의 광경을 그려봅니다. 동료 스님의 황당해하는 표정이 눈앞에 선합니다. “참새가 바쁘다”는 말을 듣고 남전 선사는 왜 신발을 벗었을까요. ‘바쁜 참새를 쫓으려고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요.

왜 신발을 벗어 땅바닥을 때렸나

동료 스님은 “참새가 바쁘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참새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바닥을 쪼아댔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날 두 스님이 만났던 참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실은 세상의 모든 참새가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럼 참새에게는 어떨까요. 그게 ‘바쁜 행동’일까요, 아니면 ‘자연스러운 평소 행동’일까요?

그렇습니다. 참새에게는 ‘평소 행동’일 뿐입니다. 그럼 왜 스님은 “참새가 바쁘다”고 봤을까요. 이 물음을 곰곰이 짚어보는 게 ‘명상’입니다. “참새가 정말 바쁜 걸까. 참새에게는 ‘바쁘다, 바쁘지 않다’는 생각도 없을 텐데. 그럼 왜 그 스님 눈에는 바쁘게 보였을까?’ 이렇게 짚어가다 보면 “아하!”하고 탄성이 터집니다.

아직 물음은 남아 있습니다. “그럼 남전 선사는 왜 신발을 벗어서 땅바닥을 때렸을까요? 왜 그런 행동으로 참새를 쫓으려 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남전 선사가 쫓으려 했던 참새는 짹짹거리며 땅바닥을 오가는 눈앞의 참새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동료 스님의 마음속에 있는 ‘참새’였습니다. 바쁘지 않은 참새를 바쁜 참새로 보는 동료 스님의 ‘바쁜 마음’이었습니다. 남전 선사는 그 마음을 쫓아버리기 위해 신발을 벗어서 땅바닥을 두드린 겁니다.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지요. ‘바쁜 참새’를 만들어내는 ‘바쁜 마음’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본래부터 깃든 평화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심(無心)의 평화’ 말입니다.

내 마음의 참새떼

그럼 ‘바쁜 참새’는 오래된 선문답 일화에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에도 ‘바쁜 참새’는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숟가락을 쥐고서 자기 힘으로 밥을 떠서 먹으려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던 아이는 자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지요.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속이 터집니다. 답답하고 갑갑해서 참지를 못하지요. 결국 아이의 숟가락을 뺏어서 직접 밥을 떠다 먹입니다.

여기에도 ‘바쁜 참새’가 있습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실수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밥을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이 ‘바쁜 참새’입니다. 왜냐고요?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밥을 먹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는 ‘바쁜 참새’가 아닙니다. 대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바쁜 마음이야말로 ‘바쁜 참새’입니다.

우리는 종종 불평합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빨리 돌아가지?” “일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참새들은 왜 저리 바쁜 거야?”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잠시 짚어보면 어떨까요.

“마당을 오가는 참새가 바쁜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바쁜 걸까.”

글=백성호 기자, 사진=중앙포토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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