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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 ⑩ 설사병 아이 떠나보낸 슬픔···그게 대한민국 첫 두유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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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 ⑩ 정식품 베지밀 

1967년 이후 베지밀의 변천. 치료식으로 태어났지만 대중음료로 꾸준히 사랑받고 잇다.[사진 정식품]

1967년 이후 베지밀의 변천. 치료식으로 태어났지만 대중음료로 꾸준히 사랑받고 잇다.[사진 정식품]

베지밀은 1967년 환자를 위한 치료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웰빙’이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 소아과 의사로 일하던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1917~2017)이 한 고민의 산물이다. 

1967년 아기 치료식으로 개발해 #‘식물에서 뽑아낸 우유’로 명명 #두유시장 50년 ‘부동의 1위’

황해도 출신으로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독학으로 의사가 된 정 명예회장은 명동 성모병원에서 견습 의사로 일할 때 설사병에 걸린 아기 환자를 잃은 경험이 있다. 백일도 안 된 환자를 떠나보낸 기억이 훗날 두유 개발로 이어졌다. 유사한 증상의 환자가 많은데 병명을 몰라 답답해하던 그는 영국과 미국 유학 중 유당불내증(유당소화장애)이라는 병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말 그대로 모유와 우유 속 유당 성분을 소화하지 못하는 병이다. .

한국 두유 역사를 만든 고(故)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사진 정식품]

한국 두유 역사를 만든 고(故)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사진 정식품]

치료식으로 탄생, 건강음료로 성장한 ‘국민두유’  

4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정 명예회장은 유당불내증 아기가 우유 대신 먹을 치료식을 개발하던 중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사용해 보기로 한다. 물론 한국엔 여름에 즐겨 먹는 콩국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콩을 치료식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보다 체계적인 생산이 필요했다. 2년 연구 끝에 세상에 나온 두유는 발명 특허 및 영양식품 허가를 받고 베지밀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베지밀은 식물(Vegetable)에서 뽑아낸 우유(Milk)라는 뜻으로 정 명예회장이 직접 지었다.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 유당불내증을 앓는 아기는 전용 분유를 먹으면 된다. 성인용 락토프리 유제품도 넘치도록 많이 나와 있다. 더는 베지밀은 유당불내증 아기 치료식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를 위한 의사의 고민이 만들어 낸 베지밀은 여전히 일반 소비자를 위한 기호 음료로 생활 속에 남았다.

1967년 생산된 첫 베지밀. 가내수공업으로 소량만 만들어 입원 환자에 제공했다.[사진 정식품]

1967년 생산된 첫 베지밀. 가내수공업으로 소량만 만들어 입원 환자에 제공했다.[사진 정식품]

소박한 시작, 꾸준한 인기

처음 베지밀을 만드는 곳은 소박했다. 가내 수공업 형태로 소량 생산해 병원에서만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찾아오는 환자에게 줄 물량을 댈 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뒤늦게 73년 직접 정식품을 설립하고  경기도 신갈에 하루 약 20만개를 만들 수 있는 공장도 세운다.  84년에 청주에 자동화 생산설비를 갖춰 일일생산량을 250여만개로 늘리는 투자를 진행했다. 시설을 늘리고 3~4년은 경영 여건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판매량이 증가 두유 대중화를 이끌 수 있었다. 80년대에 중반엔 동방유량의 ‘그린밀크’ 서주우유의 ‘서주밀’ 등 경쟁 두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베지밀뿐이다. 현재까지 삼육두유와 두유 시장을 양분해 점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른 두유 제품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베지밀은 두유의 대명사다. 두유의 원료가 되는 콩은 거의 전량 수입이다. 80년대부터 미국과 호주의 대두를 수입 사용해 왔는데, 국내 생산 콩이 부족하기도 하고,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은 오리지널인 베지밀 A(담백한 맛), 베지밀 B(달콤한 맛)다. 콩을 직접 갈아 만든 두유 액을 사용하고 비타민ㆍ엽산ㆍ칼슘ㆍ철분 등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의 영양성분을 첨가했다.  이 두 제품이 전체 매출액(지난해 기준 2158억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1973년 경기도 신갈에 설립된 정식품 베지밀 공장 준공식 기념 사진. 가운데 가슴에 꽃을 단 정재원 명예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정식품]

1973년 경기도 신갈에 설립된 정식품 베지밀 공장 준공식 기념 사진. 가운데 가슴에 꽃을 단 정재원 명예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정식품]

최근 정식품은 베지밀 브랜드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 2014년에 출시한 ‘베지밀 과일이 꼭꼭 씹히는 애플 망고 두유’는 두유 맛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조로운 맛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플 망고를 넣고 씹는 식감을 살리기 위한 알갱이도 넣었다. 콩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다양한 맛을 실험 중이다

여전히 베지밀 오리지널이 매출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게 정식품의 고민이다. 최근엔 기능과 맛을 다양화한 베지밀 제품 종류의 판매를 늘려가고 있다. [사진 정식품]

여전히 베지밀 오리지널이 매출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게 정식품의 고민이다. 최근엔 기능과 맛을 다양화한 베지밀 제품 종류의 판매를 늘려가고 있다. [사진 정식품]

고령화 시대에 맞춰 시니어 두유 시장 개척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7년에 출시한 ‘베지밀 5060 시니어 두유’는 국산 검은콩을 사용하고 칼슘 등 영양성분을 첨가해 노인에게 인기가 좋다. 이 제품은 출시 2년인 지난 3월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했다. 이 외에도  ‘베지밀 건강맘(수유산모용)’, ‘베지밀 하루건강 칼로리컷 두유(다이어트용)’ 과 같은 맞춤형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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