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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북핵과 달리 선택·협상의 대상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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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호 02면

정치학자이자 교육행정가인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지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세를 모니터링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정치학자이자 교육행정가인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지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세를 모니터링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기후변화의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일자리·경제성장·북핵 등의 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관심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후변화가 상당히 전문적·기술적(technical) 영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어려운 문제에는, ‘포퓰러라이저(popularizer)’ 즉 "어떤 문제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알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은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씨름하고 있다. 그를 인터뷰했다.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 #둘 다 재앙, 경중 따지기는 무의미 #유엔선 지구행성 ‘실존적 위협’ 규정 #수십년 내 ‘6번째 대멸종’ 진행 중 #‘기후 룰렛 게임’ 같은 표현도 등장 #먼 얘기 아닌 나·우리 문제 인식을 #청정·재생에너지 등 모든 방법 강구 #국가 의제 우선순위부터 재검토를

유엔은 북핵과 기후변화 중 어느 문제를 더 중시하리라고 생각하는지.
"둘 다 중요하다.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큰 재앙이다. 경중 따지기는 의미가 없다. 핵 문제는 선택의 문제이며 협상의 여지가 있다. 기후변화는 선택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유엔의 최근 공식 입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인위적 기후변화(anthropogenic climate change)를 ‘이 시대의 결정적 사안’ ‘지구사회의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한다. 1980년대 말 어느 과학자는, 지구상에서 매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40만 개가 폭발하는 양의 에너지를 분출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경제·산업 규모가 더욱 확대된 오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혹서에 시달렸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지구촌 도처에서 40~50도를 오르내리는 기록적인 열파 현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나날이 그 규모·강도·빈도를 더해가는 가뭄과 산불, 폭풍과 홍수, 극지방 대규모 해빙과 해수면 상승 같은 지구적 이변이 속출한다. 지난 몇 년간 통계에 따르면 매년 수천만 피해자와 난민이 발생했다. 수십 년 내 100만 종이 더 멸종하게 될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것이 지구행성의 현주소다. 교황청도 재앙을 막을 ‘시간이 다 돼간다’ ‘지구운명의 날을 말하는 것이 더는 경멸의 대상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라는 매우 강경한 어조의 경고를 내놓는다.”

무기력한 유엔, 미흡해도 힘 실어줘야

양차 대전의 비극이 유엔을 출범시켰지만, 유엔은 전쟁 앞에 무기력했다. 유엔이 과연 기후재앙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을까.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의 보고서인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 시나리오 접근법’은 지구평균 기온이 앞으로 1, 2도가량 더 오르면 대재앙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열실지구(hothouse Earth)’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구의 궤적에 진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문명붕괴를 비롯해 지구촌 곳곳의 내전과 전쟁, 심지어 핵전쟁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국가 정체성의 대혼란과 국제 질서의 치명적인 교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유엔이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세월 유엔이 이끈 기후대응 체계의 실효성을 살펴보면 더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또 2015년 12월 190여 유엔 회원국이 어렵사리 끌어낸 ‘파리협약’마저도 트럼프 행정부의 탈퇴선언으로 지지부진해졌다. 러시아·중국·캐나다·영국·호주 등 많은 나라도 파리협약이 약속한 탄소배출 저감 노력에 미온적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급박하다.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마치 세계대전과 같은 준비체계를 갖춰야 한다.’ 근래에 들어 이런 주장이 나온다. 미흡하더라도 희망을 걸 수 있는 길은 그동안 정부·학계·전문가·시민단체·기업의 포괄적 협력을 주선해온 유엔에 힘을 싣는 일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단기적인 정치 논리와 경제 이익을 앞세워 언제든 각자도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국가에 의존하기엔 상황이 긴박하다. 지금은 호주 보고서의 표현처럼 지구 위 모든 ‘지적 생명체의 명운이 걸린’ 지구적 기후 비상사태다.”

기후변화 문헌은 방대하다. 기존의 문헌에 비해 호주 보고서가 특별한 이유는?
“호주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 관련 티핑 포인트들(tipping points)의 논리적 인과관계를 체계적으로 다룬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대규모 극지방 빙권 해동, 북극 지역 메탄 방출 가능성, 아마존을 비롯한 지구촌 열대우림 유실, 장기 탄소주기 효과 등이다. 이 티핑 포인트들은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그럴 경우 지구 평균 기온은 순식간에 1도, 2도, 3도 치솟을 수 있다. 또 지구 평균 기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모여 사는 수많은 해안 도시와 지역이 ‘거주할 수 없는 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공할 경고도 담고 있다.

기후변화는 해외에서 벌어지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 문제, 우리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치명적인 열파와 함께 대규모 폭풍이 장기간 한반도에 머물고, 설상가상으로 전력망과 식수체계, 사회기반시설이 대규모로 붕괴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식량 위기가 전 세계를 뒤덮고, 상상을 초월한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후학자들은 ‘기후 카지노’ ‘기후 룰렛 게임’ 같은 표현으로 오늘의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상정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의제의 우선순위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호주 보고서가 주는 시사점이라고 생각한다.”

초연결 시대, 과학·철학적 의미 함께 만들 때

기후변화로 2050년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앙포토]

기후변화로 2050년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앙포토]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과학기술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국제정치의 현실에 맞는 시나리오 개발이 시급해 보인다.
“막스 베버는 이런 요지의 말을 남겼다. 『경제와 사회』에서다. ‘역사의 흐름은 근본적으로 이해관계(interest)의 역학에 따라 그 방향을 잡는다. 그러나 마치 전철수((轉轍手) 역할을 하는 관념(idea)에 의해서도 그 방향을 틀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선 더 그럴 수 있다.’

‘문제 해결의 단초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민의의 흐름이 더 중요해졌다. 국가를 움직이는 현실정치는 그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선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시민의식의 문제다. 성장과 복지, 소유와 안정 같은 시대적 가치와 함께 공동의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익과 관념의 정치학.’ 현실정치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그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힘을 싣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원로 과학철학자의 말처럼, ‘미래는 재난과 의식의 경주에서 무엇이 승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시민사회가 각성해 기후변화에 잘 대처하는 정당을 지지하고, 그런 세력이 집권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그것이 최소한의 요건이다. 대기에 떠 있는 온실가스도 포집해야 한다. 학계에선 태양 복사열을 우주로 반사하는 기술, 북극에서 녹아내린 빙권을 인위적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 진행 중인 청정·재생에너지 전환정책과 함께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시민사회의 의식 변화가 현실정치에 의미 있게 전달될 때 가능해진다. 그런 전환적 노력이 시대의 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조인원 이사장은 지난 9월 중순,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 기조연설에서 기후위기에 따른 개인의 실존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의 실존과 인류의 실존이 하나가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실존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다. 개개인이 바라보는 현상의 본질, 궁극의 실재에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천착하는 철학적 문제다. 우리는 지금 내면의 성찰과 모색을 통해 국가와 사회, 국제사회의 고군분투를 이끌어내야 할 기로에서 있다. ‘초연결의 시대’의 과학적·철학적·인간적 의미를 함께 만들어내야 할 때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하고 이후 학자·교육행정가로 일했다. 경희대학교 총장(2006~2018)에 이어 현재 경희학원 이사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와 선택』(1996), 『포월의 초대: 탈권위, 탈현대의 새로운 정치담론을 찾아서』(2006), 『정치의 미래: 그 이상향을 탐색하다』(2008), 『미래대학 라운드테이블』(2010), 『정치와 정치 그리고 정치』(2012), 『내 안의 미래』(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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