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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曰] 서울대, 글로벌 일류 먼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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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호 30면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국민을 화나게 한 ‘화쏘시개’ 조국은 서울대에는 부끄러운 ‘치(恥)쏘시개’가 됐다. 교수 한 명이 서울대 73년 역사와 2만8800명의 재학생, 그리고 2100명의 동료 교수를 욕보였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서울대를 화장실 드나들듯 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서울대가 왜 글로벌 일류가 되지 못하는지를 똑똑히 목도했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의 전당이 이토록 엉성한 조직이었단 말인가. 나는 그 원인을 크게 여섯 가지로 본다.

조국 사태로 행정·가치관 엉망 드러나 #오만·특권·순혈주의 못 버리면 삼류로

① 배고프면서 배부르다=서울대의 연간 예산은 1조6000억원(병원 제외) 규모다. 국내 대학 최대다. 그래도 늘 배가 고프다.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전문가 영입도, 구닥다리 실험실 장비 교체도 돈이 모자라 못 한다. 그러면서도 헤프다. 장학금은 신청하지 않아도 주고, 학기 중에 불쑥 복직해 등산만 다녀도 월급을 준다. 돈 밝히는 조국에겐 최상의 제도다. 약 900만원인 조국의 월급이면 날고 기는 강사 8명(3학점 기준, 월 108만원)을 쓸 수 있다. 강사들이 울부짖는다. 우리만 배고프다고.

② 학문 근친교배(academic inbreeding) 왕국이다=연구 부정과 품앗이 인턴, 묻지마 장학금은 순혈주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전체 교수의 80% 이상이 선후배로 얽혀 순응주의가 만연하다. 글로벌 일류 대학 중 이런 곳은 없다. 오세정 총장이 몸담았던 물리·천문학부도 39명의 교수 중 외국인은 한 명뿐이고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다. 심지어 2015년 창조적 파괴 화두를 던졌던 『축적의 시간』을 쓴 공대 교수 26명 중 타 대학 출신은 두 명뿐이다. 이런 근친교배가 창발성을 질식시키는 게 아닌가. 하버드 총장을 지낸 로런스 로웰은 “학과는 감방에 갇힌 은둔자를 양산하는 곳이 아니다”고 했다.

③ 국내용 단타만 친다=서울대 논문 생산량은 놀랍게도 세계 10위다. 영양가는 없다. 상위 10% 논문 비율이 겨우 7.6%다. 세계 656위다(2019 라이덴 랭킹). 내수용 단타에만 골몰하니 장외 홈런이 나오겠는가. 글로벌 랭킹은 100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2015년 72위 → 2019년 129위(US 뉴스 & 월드 리포트), 2015년 85위 → 2019년 64위(THE)다.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글로벌화는 심각하다. 외국인 교원이 5%(105명)도 안 된다. 아시아 1위 싱가포르국립대는 절반에 가깝다.

④ 잘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이다=입학정원 3179명은 산술적으론 전국 수험생 55만 명의 0.5~1%에 해당한다. 전국의 공부 선수, 즉 호모 아카데미쿠스의 집합체다. 그런데 학점이 높을수록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 떨어진다. 잘 받아쓰는 수용력만 강하다(『누가 서울대에서 A+를 받는가』 중에서).  잘 가르치는 것은  스승의 무한 소명(calling)이다. 0.5%를 5%, 10%로 만드는 건 아닌가.

⑤ 자율만 즐기고 책임은 안 진다=2011년 말 법인화 이후 사탕만 빼먹었다. 자율을 빙자한 무개념 행정이 독버섯처럼 퍼졌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봉급은 매년 공무원 인상분에 맞춰 꼬박꼬박 올린다. 내년에도 2.8%가 오른다. 10년째 못 올리고 있는 사립대엔 언감생심이다. 교직원의 권위주의는 더 심해졌다.

⑥공동체 가치관이 무너졌다=소시오패스(sociopath) 조국을 다시 들이는 과정이 모든 걸 말한다. 로스쿨 직원이 복직신청서를 대리 작성했고, 홍기현 교육부총장이 전광석화로 사인했고, 오 총장이 방관했다. 일류가 되려면 공동체 규범이 선명해야 하거늘 소가 웃을 자동 복직 규정 운운하며 정치적 보신을 했다. 학문적 자세와 정치적 선택은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이것도 서울대만 예외인가.

서울대가 글로벌 일류 대열에 뛰어들려면 자만심·우월주의·특권의식·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 결코 ‘미션 임파서블’이 아니다. 자성의 호루라기부터 불어야 한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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