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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영업익 78%가 날아갔다···'엄지쇼핑'에 저격당한 대형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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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공룡 활로 찾기

그래픽=이정권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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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새 대표이사로 강희석(50) 전 베인앤드컴퍼니 소비재·유통부문 파트너를 선임했다. 두 가지 관점에서 파격 인사였다. 우선 1993년 설립된 이마트가 창사 26년 만에 처음 외부에서 수혈한 대표라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2014년부터 6년간 재임한 이갑수 전 대표처럼 내부 인사만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순혈주의’ 기조가 강했다. 다른 하나는 인사 시점이다. 신세계는 다른 대기업처럼 통상 12월에 정기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마트 부문만 이례적으로 두 달 가까이 앞당겼다. 대표뿐 아니라 임원 40명 중 11명까지 한꺼번에 교체했다.

쿠팡 등 신속 배송에 수요층 잠식 #이마트, CEO 외부 수혈 충격요법 #롯데마트·홈플러스도 수익성 악화 #정용진 “초저가로 기회 찾아야” #신동빈은 PB 상품 재정비 등 나서 #매장 팔거나 리츠로 묶어 위험 축소 #부동산 자산 유동화에 공 들이기도

신세계 관계자는 “성과주의에 입각해 혁신하고자 단행한 인사”라며 “백화점 부문 등의 인사는 12월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확충에도 힘 쏟아

이마트의 이번 인사는 대형마트의 수익성 악화와 맞닿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마트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8% 급감했다. 특히 2분기에는 299억원의 영업손실로 창립 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이마트의 3분기 영업이익은 1200억원대로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감소한 수치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롯데마트는 2분기 33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폭이 24% 커졌다. 비상장사로 분기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홈플러스의 2018 회계연도(2018년 3월~2019년 2월)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57% 넘게 줄었다.

연면적 3000㎡ 이상 대규모 점포인 대형마트는 과거 20년 넘게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3년 11월 서울 창동에 이마트가 처음 들어선 이후 인기를 모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 성장세를 유지했다. 대형마트 흥행의 비결은 크게 가격 경쟁력과 편의성이었다. 점포 대형화와 물류비 절감으로 박리다매가 가능해 동네마트나 재래시장보다 가격 경쟁에서 앞섰다. 점포를 전국적으로 늘리고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하면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나들이 삼아 간편하게 장을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주효했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 1인 가구 증가, 온라인 쇼핑 확대 등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쿠팡을 비롯한 전자상거래(e커머스) 기업들은 초저가를 내세우면서 신선식품까지 빠르게 배송하는 전략으로 대형마트 수요층을 잠식했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2013년부터 연평균 24% 넘게 성장해 지난해 113조7000억원(거래액 기준)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시장 규모는 45조1000억원에서 39조원가량으로 감소했다.

그래픽=이정권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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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3사는 특히 저가 경쟁과 온라인 투자 등에 자의 반 타의 반 내몰려 비용 부담도 커졌다. 최근 나란히 수익성 악화 수렁에 빠진 주요 배경이다. 이마트 부문을 진두지휘하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6월의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오고 기회는 늦게 온다”며 위기감을 재차 나타냈다. 올 초 “디지털 전환을 통한 혁신이 급선무”라고 전사 차원에서 독려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롯데마트 부진에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다각도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이마트는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초저가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8월 도입한 상시 초저가 상품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이 대표적이다. 물티슈·치약처럼 소비자가 많이 찾는 생활필수품 등을 대량 매입해 초저가 구조를 확립하고, 한번 책정한 가격은 바꾸지 않는 게 특징이다. 노재악 이마트 상품본부장은 “8월부터 이달 14일까지 에브리데이 국민가격 상품 구매 고객의 1회 평균 구매액이 7만1598원으로 비구매 고객 대비 46% 많았다”며 “이달까지 상품 수를 140여 개, 연내 200여 개로 늘리고 앞으로 500개 수준의 초저가 상품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직접 기획해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판매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 재정비에 나섰다. 7월 기준 38개였던 PB 상품을 8월에 ‘온리 프라이스’ ‘스윗 허그’ ‘통큰’ 등 10개로 압축한 대신 품질과 가격 만족도를 높여 승부하기로 했다. 이달 들어 일부 PB 상품의 러시아 등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가시적 성과 기대” vs “반등 쉽지 않을 것”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左),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右)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左),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右)

홈플러스는 지난달부터 서울 남현점과 부산 해운대점 등을 ‘대형마트+창고형 할인점’ 개념의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표적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와 주로 가까운 곳에서 정면 승부하면서 활로를 뚫는다는 전략이다. 남현점은 코스트코 서울 양재점과, 해운대점은 코스트코 부산점과 3~4㎞ 거리로 가깝다. 창고형 할인점은 일반 대형마트와는 달리 오프라인에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형마트 3사 모두 ‘대세’인 온라인 사업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마트는 SSG닷컴의 상품·플랫폼 조직 전문성 보강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그룹 내 유통 7개사 통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내년 출시되는 데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 140개 점포를 온라인 주문·배송 시스템을 갖춘 거점으로 재구축할 방침이다. 임일순 홈플러스 대표는 7월 기자간담회에서 “온라인 일일 배송 건수가 기존 3만3000건에서 2021년 12만건으로 늘리도록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 확충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점포를 비롯한 부동산 자산의 유동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완화하고 투자에 필요한 ‘실탄’도 마련할 목적에서다. 이마트는 다음달 13개 점포를 부동산 사모펀드인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한 후 재임대 계약한다. 마스턴투자운용은 24일 현재 펀드 투자자를 거의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마트는 9524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마트·롯데백화점 등의 부동산을 묶는 방식으로 리츠 상장(REITs, 부동산투자신탁)을 추진하고 있다. 현물출자한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제외하더라도 1조원가량의 현금을 쥘 전망이다.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에서 63.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롯데리츠는 30일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한다.

지난 봄 리츠 상장에 실패한 홈플러스는 3개 점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공모 펀드로 1173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3인 3색’의 다른 유동화 전략을 택한 이들 중 누가 웃을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이마트·홈플러스는 임대료 부담이 생겼지만 위기 때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롯데는 임대료 일부를 배당으로 받는 대신 부동산을 그대로 떠안고 있다.

대형마트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대형마트는 e커머스엔 없는 실제 고객 접점과 풍부한 유통 노하우가 있다”며 “온라인 공략의 가시적 성과가 머잖아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박종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e커머스 성장이 오프라인 생태계를 뒤흔든 상황에서 수익성이 나빠진 대형마트의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의 노력은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허사가 될까, 아니면 극적인 반등을 이루는 계기가 될까.

이창균·황건강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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