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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부론 반박자료' 與엔 주고 野엔 못준다는 홍남기, 법원칙 허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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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국세청,관세청,조달청,통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191023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국세청,관세청,조달청,통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191023

국감 화두로 떠오른 기재부의 여당 문건 대리작성 의혹 

기획재정부의 여당 문건 대리작성 의혹은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의 최대 화두가 됐다. 논란이 된 문건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민부론 팩트체크'다.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경제정책 '민부론'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이 여기에 담겨있다. 본지는 이 문건 최초 작성자가 기재부 서기관 아이디(ID)로 기록돼 있는 등 문건 대리 작성 의혹을 제기했다. (본지 10월23일자 종합 10면 참조) 국감장은 의혹을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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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자료 제출 거부로 의혹 해소 안돼 

논란의 핵심은 기재부가 여당에 야당 반박 논리를 얼마나 제공했는지다. 국회 내부의 여야 간 경제정책 경쟁에 정부가 '플레이어'로 끼어들어 야당을 공격하는 '실탄'을 제공하는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넘어 삼권분립 원칙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혹은 해소되지 못했다. 기재부 내부에서 작성된 '민부론 분석 자료'가 의혹 확인을 위한 '스모킹 건'임에도 끝내 기재부가 이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국감에서 나타난 관료의 '정치화'

이 과정에서 노출된 것은 법 위에 서 있는 기재부의 태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감 현장에서 '나가 선 안 될' 민감한 자료가 부총리 보고도 없이 민주당 쪽으로 전달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국당엔 못주겠다는 자료를 왜 민주당에는 전달했느냐"고 따지는 야당 의원을 향해서는 "당정 협의규정상 여당에는 정부 자료가 나갈 수 있다"고 해명했다.

기재부가 밝힌 자료 제출 거부 이유도 규정에 맞지 않아 

그러나 홍 부총리 해명은 '당정 협의업무 운영규정'에도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정부가 여당과 협의할 수 있는 범위를 ▶법률안 ▶대통령령안 ▶국민생활·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안으로 정하고 있다. 기재부가 민부론의 오류 등을 검토한 자료는 이 셋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협의해야 할 정책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중대한' 정책이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은 야당의 정책 구상이 될 수는 없다. 한국당의 '민부론'이 당장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안이 될 수 있겠는가.

홍 부총리는 또 한국당에 자료 제출을 거부한 근거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들었다. 국회에는 제출돼선 안 될 일종의 '기밀'이란 의미다. 이 역시 정당한 근거일 수 없다. 국회증언감정법상 국가기관은 직무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국회에 서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 군사·외교·대북 관계의 기밀만이 국회 자료 제출 거부 요건이 된다. 대단한 국가기밀도 아닌 정부의 야당 반박 문건 하나로 국회법 원칙이 허물어질 지경이다.

잘못된 경제 인식엔 직언 못하는 경제관료의 '정치화' 

이 모든 논란의 근저에는 경제관료의 '정치화'가 깔려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투자·수출·소비 등 모든 경제지표가 고꾸라져가고 있다. 그런 데도 "경제가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보는 청와대의 경제 인식에는 직언하지 않는다. 그 대신 행정력은 야당의 오류를 찾는데만 동원된다. 물론 집권 여당에 편향된 관료의 행태는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다. 이는 사라져야 할 '적폐'이지, '적폐청산'을 외치는 정부가 따라 할 일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은 누가 대안 세력인지 정정당당한 경제정책 '진검승부'를 보고 싶어한다.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았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한쪽 정당만을 위한 '입시코디'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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