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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성진 교수(경성대 에너지학과)가 지난주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친(親)원전론자다. 탈원전은 국가의 자살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월성 1호기 폐쇄를 막아야 한다”며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국회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폐쇄에 제동을 걸었다. 폐쇄 결정이 옳은지, 평가 보고서가 조작된 건 아닌지, 이사들의 배임 행위는 없었는지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한수원, 월성 1호기 폐쇄 위해 #평가 보고서 왜곡·조작 의혹 #감사원 감사서 진실 밝혀져야

조 교수는 “감사원이 제대로 감사만 한다면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은 취소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감사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관련자들이 진실의 입을 열어야 한다”며 솔선수범, “내가 먼저 입을 열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말년에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약 2년간 한수원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원자력 진흥에 힘을 보태려고 맡은 자리였는데, 하필 탈원전 정부가 들어섰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온몸으로 맞서게 됐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게 그다. 탈원전 진영의 비난과 압력이 거셌다. 잠시 잠적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외이사직을 내놨다. 그 후 1년여를 그는 다른 사람처럼 살았다.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하는 성격이지만 각종 세미나에 나가 탈원전의 문제를 지적했다. 국회 증언도 했고 거리에서 100만인 서명운동 천막을 지키기도 했다. 어느새 그는 탈원전 폐지 전도사가 돼 있었다. 소득도 있었다. 조작과 짜 맞추기 의혹으로 점철된 월성 1호기 폐쇄의 숨겨졌던 퍼즐을 찾아냈다. 여러 사람의 도움과 제보 덕분이었다.

작년 6월 15일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의 이사회부터 문제였다. 보통 본사가 있는 울산에서 하던 이사회를 서울에서 했다. 그것도 하루 전에 통보했다. 삼덕회계법인에 의뢰한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 결과 “경제성이 없다”며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했다. 이사들에겐 보고서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달랑 두 쪽짜리 요약본만 줬다. 80%, 60%, 40%의 미래 가동률 시나리오 중 가장 나쁜 40%를 적용했다. 근거도 분명치 않았다. 월성 1호기의 35년 평균 가동률은 78.3%였다.

판매 단가도 확 깎았다. 단가가 낮을수록 매출이 줄고 경제성이 떨어진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전력 판매 단가를 1kWh당 2018년 55.96원, 2021년 48.78원을 적용했다. 1kWh당 48원 이하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발전 설비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실제 2018년 원전 전력 판매 단가 평균은 62.1원이었다.

월성 1호기만 유난히 정비 기간이 길었던 것도 의문이다. 월성 1호기는 2017년 5월 두 달간 정비를 마치고 재가동할 예정이었지만, 한 달 뒤인 2017년 6월 대통령이 “월성 1호기 즉각 정지”를 선언하자 1년 넘도록 정비 기간을 연장했다. 그래놓고 가동률이 낮아 경제성이 없다며 퇴출을 결정했다. 같은 중수로형인 월성 2호기는 똑같은 정비에 81일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대통령이 기·승·전·탈원전을 외치니 밑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할 때도 됐다. 월성 1호기가 시작이다. 대통령이 안 하면 국민이 나서 강제로라도 바로잡을 것이다. 조성진 교수는 국민의 힘을 믿는다. 그는 1년여간 탈원전 폐지를 위해 뛰면서 절감했다. 우리 국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감사원에도 제보와 고발이 물밀듯이 밀려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야 감사원도 깔아뭉개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당신의 용기가 나라를 살린다”며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인들의 거친 아우성 때문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에 기인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