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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들의 스승' 도이치는 왜 소프라노 황수미를 택했나

중앙일보

입력

4년째 한 무대에 서고 있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왼쪽)와 소프라노 황수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4년째 한 무대에 서고 있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왼쪽)와 소프라노 황수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74)의 첫 내한은 1980년,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와 함께였다. 독일 가곡의 권위자이던 프라이는 당시 35세이던 도이치를 파트너로 아시아에서 공연했다. 이후 가곡 피아니스트로서 도이치의 경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프라이와 12년을 함께 했고,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를 비롯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몸값 높은 성악가인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까지 맡아 함께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반주자’로 분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가곡 가수들의 스승, 혹은 파트너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이 화려한 ‘도이치 명단’에 한국 성악가가 이름을 올렸다. 소프라노 황수미(33)다. 황수미는 4년 전부터 도이치와 함께 하고 있다. 2015년 독일 본에서 시작해 유럽 무대에 같이 섰다. 국내에서는 두번 함께 했다. 2015년, 2017년 독일의 가곡을 중심으로 듀오 콘서트를 열었다.

이번에는 음반이다. 두 음악가가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 녹음한 음반 ‘Songs’가 이달 나왔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온 황수미의 데뷔 앨범이다. 이를 기념한 음악회가 25일 서울에서 열린다.

도이치는 23일 오후 서울 신사동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수미의 소리는 아름답고 색채가 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로 수용해 반영하는 점이 놀라운 소프라노”라고 했다.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헬무트 도이치(왼쪽)와 황수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헬무트 도이치(왼쪽)와 황수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황수미는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후 독일 본 오페라 극장의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현재는 유럽 전역의 무대에 서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찬가를 부르며 조수미ㆍ홍혜경ㆍ신영옥을 잇는 소프라노로 이름을 알렸다. 부드럽고 깊은 소리, 안정감 있는 표현으로 낭만주의 음악에 잘 어울리는 소프라노다.

듀오를 먼저 제안한 것은 헬무트 도이치다. 도이치는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뮌헨 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황수미는 “이때는 다른 교수에게 배웠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지만 공개 레슨에서 도이치에게 배울 기회는 있었다”고 했고 도이치는 “공개레슨 이후 내 제자가 되지 않겠냐고 집요하게 물었다”고 했다. 이후 황수미가 우승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도이치는 마지막 라운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콩쿠르 이후 e메일을 보내 “공연 같이할 반주자가 필요하면 함께 하자”고 한 것도 도이치다.

40년 넘게 가곡을 연구한 도이치는 황수미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건넸다. 황수미는 “특히 독일어로 된 시의 해석을 정확히 해주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180도 다르게 표현해야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 들어간 R.슈트라우스의 가곡 ‘밤’ 중에서 독일어의 ‘훔치다’라는 단어를 노래할 때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대신 날카로운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도이치가 조언했고, 그렇게 하니 색이 살아났다.” 황수미는 “독일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이치의 조언을 들으면 파스텔 톤이었던 시어들의 색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도이치는 황수미의 노래에서 독일어 단어 하나하나를 지도해주며 녹음과 공연 준비를 이끌었다고 한다.

도이치그라모폰이 황수미의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사진 유니버설뮤직]

도이치그라모폰이 황수미의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사진 유니버설뮤직]

이번 앨범에는 R.슈트라우스를 비롯해 리스트, 브리튼의 가곡이 담겼다.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국식 영어로 된 노래들이다. 황수미는 “앞으로도 오페라와 가곡 연주의 균형을 잡으며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이치는 “가곡을 잘 부르는 성악가들은 스스로 드라마를 만들고,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안다”며 “오페라와 달리 조명ㆍ의상, 상대 배역이 없이도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반에 수록된 가곡 외에도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의 가곡을 들을 수 있는 듀오 콘서트는 25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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