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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비판한다" 이스마엘 카다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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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상 받은 이스마일 카다레. 그는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박경리문학상 받은 이스마일 카다레. 그는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페터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비판에 동의합니다. 작가로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Ismail Kadare·83)가 페터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제9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카다레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과 작가의 정치적 성향을 결부시켜선 안 된다. 하지만 작가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법"이라며 "한트케의 노벨상 수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견해에 동의한다. 우리는 그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페터 한트케는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옹호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표현의 자유 옹호 단체인 미국 펜클럽(PEN America)과 생존자 단체 등은 반발의 목소리를 높였다. 카다레는 "페터 한트케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고,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 인간적인 친분이 있지만, 작가로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인종학살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수용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조국보다 유명한 작가 

알바니아의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는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맨부커인터내셔널상(부커인터내셔널상)의 제1회 수상자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저명한 작가다. 2009년 스페인의 권위 있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상(문학부문)을 수상했고, 2016년 레지옹 도뇌르 최고 훈장을 수훈했다.

그는 고등학생이던 1953년에 『서정시』라는 시집을 출간해 시인으로 데뷔했고,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카다레는 이 소설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고 후에 이 작품으로 '카다레는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유명하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이후 카다레는 많은 작품을 통해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암울한 조국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알바니아에서 몇몇 작품은 출간금지라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카다레는 전제주의와 독재체제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다. 카다레는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까지 파리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가 자신의 책 '잘못된 만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스마일 카다레가 자신의 책 '잘못된 만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카다레는 조국 알바니아에 대해 "유럽에서 가장 독재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다. 알바니아에서 작가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글을 쓸 수 없었다"며 "알바니아 헌법에는 정권에 반하는 표현을 할 수 없다는 항목이 있었다. 작가들이 악마적인 상황에 노출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카다레는 "자유가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실존은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독재정권과 전체주의가 끝난 이후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번역에 의해서도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있다. 문학은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어떤 것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이 낙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카다레는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우스꽝스러운 비극,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작품 특유의 풍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작품세계를 구상하는 것 나뿐만 아니라 알바니아 동료작가들이 찾아낸 방법이었다. 당시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있던 모든 작가 권력에 대항에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찾다가 도달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카다레는 북한 문학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을 밝혔다. 그는 "서방 유럽국가들이 알바니아를 바라보는 시선과 알바니아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닮아있다"며 "북한 문학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북한에도 그들만의 문학이 필요하다. 그들이 낙원, 천국이란 개념을 자주 사용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이 낙원과 천국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소감에 대해서는 "한국은 먼 곳에 있는 국가처럼 여겨졌는데, 그런 나라에 와서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고 했다. 이어 "알바니아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면서 "박경리 작가의 명성도 알고 있다. 아직 그의 작품을 읽진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다레는 오는 26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는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 1억원의 상금과 함께 상장을 받는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문화재단이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2011년 제정한 상으로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이 시대의 가장 작가다운 작가’에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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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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