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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주친 멧돼지가 집중 공격하는 신체 부위 어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남식의 야생동물 세상보기(1)

대부분의 사람이 야생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고, 궁금증도 크다. 야생동물에 대한 정보는 차고도 넘치지만 단편적으로 흘러 정리가 어렵다. 야생동물은 생태, 신체구조, 생존방법, 인간과의 공존, 현안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접근해야 한다. '반려동물 세상보기'을 연재했던 신남식 교수가 야생동물과 함께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전달한다. <편집자>

지난달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 농장에서 처음 발생했다. 발생원인에 대한 공식발표는 없지만 멧돼지를 유력한 매개체로 지목하고 있다. 질병발생 인근 지역의 멧돼지 사체에서 ASF바이러스가 검출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이미 수백 마리가 사살되었고 앞으로도 사살작업은 ASF발생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분류학적으로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멧돼지는 ‘우제목 돼지과 Sus속’의 한 종이며 학명은 ‘Sus scrofa’로 농장에서 사육하는 집돼지와 똑같다. 돼지과에 속하는 17종 중 Sus scrofa만이 ASF에 감염돼 증상을 나타낸다, 이외 16종의 돼지는 감염이 되지 않거나 감염이 돼도 증상이 없다.

멧돼지는 농작물을 마구 파헤치고 먹기 때문에 유해조수로 수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전방에 설치한 포획틀에 야생멧돼지가 포획된 모습. [사진 화천군청]

멧돼지는 농작물을 마구 파헤치고 먹기 때문에 유해조수로 수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전방에 설치한 포획틀에 야생멧돼지가 포획된 모습. [사진 화천군청]

멧돼지는 돼지과에 속하는 동물 중 분포영역이 가장 넓어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 미국 동남부, 중남미, 호주 등에 이른다. 먹이는 풀·나무뿌리·도토리·과일·지렁이·개구리·뱀·새알·토끼 등 다양하다. 농작물도 마구 파헤치고 먹기 때문에 유해조수로 수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멧돼지의 암컷은 생후 18개월이 되면 번식 능력을 갖춘다. 12~1월에 짝짓기를 해 4~5월에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배에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에 개체 수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또한 호랑이, 표범, 늑대가 멧돼지의 포식자가 되는데 한국에는 이러한 동물이 야생에서 절멸됐다. 수렵으로 조절해도 그 수가 줄지 않는 이유다.

11월에서 1월 사이의 번식기가 되기 전에 어미와 함께하던 새끼는 어미 곁을 떠나 새로운 영역을 찾으러 이동해야 한다. 번식기에는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고 싸움에서 패한 수컷은 지내온 터전을 떠나야 한다. 이렇게 새로운 영역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동통로가 단절되거나 먹이가 부족한 경우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하는 상황이며 10월부터 증가하는 원인이 된다.

멧돼지의 영역과 활동 거리는 먹이의 많고 적음에 따른다. 암컷은 5~10km², 수컷은 10~20km²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 낮에는 진흙 목욕을 하거나 쉬며 주로 야간에 활동하는데 영역 내에서 2~10km를 이동한다. 수영도 매우 잘해 7km 정도까지는 헤엄쳐 갈 수 있다. 때문에 북한에서 감염된 멧돼지가 DMZ를 통해 이동한 것뿐만 아니라 수영을 해서 건너왔다는 가설도 세울 수 있다.

멧돼지는 보통 사람을 피하고 공격성을 나타내지 않지만 예민한 번식기에는 사람과 마주치면 공격을 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6일 세종시 한 아파트 주차장에 나타난 멧돼지. [연합뉴스]

멧돼지는 보통 사람을 피하고 공격성을 나타내지 않지만 예민한 번식기에는 사람과 마주치면 공격을 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6일 세종시 한 아파트 주차장에 나타난 멧돼지. [연합뉴스]

멧돼지는 평소에 사람을 피해 다니며 공격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영역을 침범하거나 번식기에는 성질이 예민해져 사람과 마주치면 공격을 할 수 있다. 순식간에 돌진해 주둥이와 엄니로 대퇴부에 깊은 상처를 반복적으로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멧돼지와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혼자 산행하지 말고 등산로가 아닌 곳은 접근하지 않아 마주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피할 수 있는 은폐물이 있다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동물 시력은 사람보다 못하다. 멧돼지도 시력은 좋지 않다. 그러나 후각은 매우 발달했다. 땅속에 있는 농작물을 파헤쳐 먹거나 지렁이를 잡아먹는 것도 발달된 후각 덕분이다.

1980년대 초 국내에서 멧돼지를 구하기가 어려워 일본에서 수입했던 기억이 있다. 근래에는 밀렵행위의 감소와 포식자 부재로 개체 수가 급속히 증가해 현재는 35만 마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개체 수는 증가하지만 그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서식공간이 줄어드니 먹잇감도 부족하게 된다.

서식지가 부족해 이동하려는데 도중 이동통로가 막혀 도심에 나오니 주민신고로 구조대원에게 잡힌다. 먹이가 부족해 농작물에 손을 대니 유해조수라 하여 엽사의 총에 맞는다. 상위 포식자가 없어 살만하다 했는데 살기가 더 힘들다. 더군다나 ASF를 옮기는 매개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일부 지역에서는 씨를 말리고 있다. 이래저래 수난시대를 맞고 있는 멧돼지다.

멧돼지도 여느 생물체와 같이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개체 수와 분포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서식지 보호와 확보를 위한 방안, 수렵제도의 보완, 돼지농장에 접근 방지 대책 등이 과제가 될 수 있다. 멧돼지 수난시대에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을 좀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 이레본 기술고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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