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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발 마사지 받는 시대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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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한국에 드리운 중국의 그늘이 짙다. 수교 당시 똑같던 경제 규모가 8배로 벌어지고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25%를 넘어서면서다. 이런 경제 구조가 볼모나 되는 양 중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낮춰 본다. 대통령 특사의 좌석도 부하인 홍콩 행정장관 앉히던 자리에 배치한다. 중국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국은 한때 한국을 ‘경이롭고 신비한 나라’로 대접했다. 중국이 사회주의 실험으로 잠들어 있을 때 한국은 국가 발전의 우등생이 됐기 때문이다.

중국 영향력 벗어나는 길은 #과도한 경제 의존도 낮추고 #초격차 더 벌이는 길뿐이다

잠에서 깨어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 주도의 국가 발전 전략을 그대로 따라갔다. 나아가 그런 경외심과 신비감은 1992년 중국이 체제를 뛰어넘어 한국과 수교하는 밑바탕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산업현장 견학은 중국 지도자의 필수 코스가 됐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대권을 잡기에 앞서 지방 정부 관료 시절부터 한국을 드나들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자동차·제철소를 두루 찾았고 삼성전자를 견학할 때는 눈을 반짝였다. 중국은 엄두도 못 내는 반도체가 척척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장을 목도한 중국 지도부는 경제 개발과 외자 유치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맞춰 한국의 자동차·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줄줄이 중국에 진출했다.

이랬던 중국의 한국 평가는 오래가지 못하고 반전을 맞았다. 30대 대기업 중 16개와 시중은행 5개가 문을 닫고 실업자 200만명을 쏟아낸 외환위기가 1997년 발생하면서다. 중국이 수교 후 한국을 처음으로 다시 보게 되는 계기였다. ‘한국을 무작정 따라갈 게 아니다. 그러다가는 졸지에 외세(IMF·국제통화기금)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은 이때부터 ‘한국병’을 예의주시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되지 않을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이 한국을 얕잡아보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0년 마늘 분쟁이 터지자 중국은 힘을 과시했다. 한국 정부는 찍소리 못하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한국에선 앞을 내다보는 대응책이 논의되지 않았다. 간혹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발 마사지 빨리 받아라. 조금 더 있으면 처지가 역전된다”고 경보음을 날렸지만, 콧방귀만 돌아왔다. 중국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 ‘대국 굴기’를 만방에 과시했다. 곧이어 샤오미가 데뷔했지만, 한국에선 ‘대륙의 실수’라며 조롱했다. 한·중 5000년 역사에서 찰나의 역전에 취해 아무도 중국의 부활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 버티는 제품은 반도체와 화장품뿐이다. 이마저도 유통기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중국이 한국을 경시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좌파 노무현 정부조차 굳건한 한·미동맹을 선택했지만, 박근혜는 미국의 반대를 뿌리치고 2015년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한국이 한·미 동맹 틀에서 벗어나 중국에 다가선 셈이다. 이는 중국이 언제든 한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국가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사드 배치 이후 노골적 한국 때리기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2017년 국빈 방문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을 더 낮췄다. ‘혼밥’을 거듭하면서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면서다. 현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와 통합’ ‘한·미·일 동맹’을 안 한다는 ‘3불’ 약속도 했다.

앞으로 중국은 더 다가오라고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미국을 넘보는 힘을 갖게 되면서 ‘한국쯤이야’라는 중화 패권 의식이 밑바탕에 흐른다. 결국 돌파구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초격차를 더 벌이는 길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을 도우려면 느슨한 한·미 동맹을 다시 강화하라. 중국이 대국 굴기를 과시한 올해 건국 70주년을 자축이라도 하듯 지난주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던 베이징을 돌아보면서 떠오른 격세지감이자 한국의 생존전략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