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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국이야?” 항변부터 “제2의 조국은 인격모독”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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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내가 조국이야?”

“‘제2의 조국’이란 식으로 지나치게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는 것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나온 말이다. 전자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종민 의원이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야당에 발끈하며 내뱉었다. 후자는 전해철 의원이 야당의 공세에 항변하듯 던진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뒤인 17일 형사정책연구원에 대한 국정감사 과정에서다.

두 발언의 이면에 담긴 뜻? 상식에 기초해 사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위선적 내로남불이고, 비상식적이며, 몰염치하다. 그러니 조국이란 말 자체가 심한 인격모독이고, 그런 의미가 담긴 대명사다’라는 정도 아닐까. 그래서 “내가 조국이야?”라는 항의성 고함이 터졌을 때 국감장이 일순간에 웃음바다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겉으로는 조 전 장관 감싸기에 매진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본심을 들킨 여당 관계자의 헛헛한 웃음이 더해져서 말이다. 아마 그 폭소엔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이 녹아 있었으리라. 꾹꾹 눌러놨던 양심의 소리를 터뜨리며 속 시원함도 느끼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조 전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며 “검찰 개혁에 대한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와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는 자세…”라고 말했다. 인격모독용으로 비화할 정도가 된 조 전 장관의 행태가 풍상을 견딘 지조로 둔갑한 느낌이다. 한편으론 ‘그를 임명한 건 잘못한 게 아니다’는 강변(強辯)마저 비치는 듯하다. “협치를 하려 했다”(21일 종교지도자 간담회)는 의중을 어디에서 읽어낼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조 전 장관의 사퇴 전후로 나온 여당 의원의 속내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무리 정치 셈법이라고 쳐도 이 정도로 윗물과 아랫물의 흐름이 다르면 향후 정책인들 온전할까 싶다. 진심이 뭔지, 아니면 진심은 딴 데 있지만 이념을 좇아 밀어붙이겠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믿음이 갈 리 만무하다.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 조합을 희망했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다. 한데 윤 총장은 17일 국감에서 “정무 감각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형을 구속할 때도 (수사에) 별 관여가 없어 가장 쿨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둘의 조합은 위선·뻔뻔함 내지는 확증편향과 힘의 논리에 기우는 대신 원칙에 입각한 쿨한 업무 스타일의 조합이다. 환상적으로 보이는가. 언제 사달이 나도 날 조합 아닐까.

하기야 내로남불이나 부조화가 어디 정치판뿐이던가. 위기론에 휩싸인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에 널려있다. 유리한 경제 통계만 끌어다 자화자찬을 하는 견강부회는 기본이다. 대통령조차 가난한 사람(1분위)의 가처분소득이 1년 6개월 동안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소득이 증가했다”고 하니 어찌 조화로운 국정운영이란 평가를 받겠는가.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에 X자 표시를 하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야당의 행태도 문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비판은 하더라도 존중하는 게 이치다. 이러면서 제2의 조국을 운운하고, 협치를 주문할 수 있는가.

비상식적 ‘아집’과 그 반작용에 기인한 ‘탓’이 난무한다. 그러면서 개혁이란 단어를 마구잡이 끌어쓴다. 검찰개혁, 규제개혁, 노동개혁, 선거제 개혁, 교육개혁 등 웬만한 사안에 모조리 개혁을 붙인다. 역으로 얘기하면 그만큼 이 나라 전반이 문제투성이란 말 아닌가. 개혁을 외치는 당사자부터 시작하고 실천에 옮겼다면(선시어외·先始於隗) 이렇게까지 썩었을까. ‘내가 제2의 조국이다’는 반성부터 하면 어떤가. ‘탓’으로 편집하는 데 너무 당당해서 걱정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