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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노동계 눈치보다 대통령 한마디에…무기력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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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경희 정치팀 기자

김경희 정치팀 기자

내년 시행 예정인 중소·중견기업(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주52시간 근무제’를 두고 여권이 딜레마에 빠졌다. 이대로 강행하면 경제계가 반발하고, 시행 자체를 유예하면 노동계가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또 내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주52시간제도의 보완 입법으로 꼽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여야 간 접점을 못 찾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여야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 후 “탄력근로제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비쟁점 민생법안들을 오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급적 최대한 처리하도록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선언적 합의 이상은 아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지난해 11월 여야정협의체에서도 합의했다. 현행 3개월에서 얼마나 확대하느냐를 두고 평행선을 달린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올린 6개월안을 고수하지만, 자유한국당은 1년을 주장하고 있다.

급해진 청와대는 연일 국회를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노동시간 단축 확대 시행에 경제계 우려가 크다. 국회 입법이 안 됐을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을 미리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나흘 전 경제단체장들을 만나 “중소기업의 56%가 주 52시간제 준비가 안 됐다”(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는 의견을 들은 뒤였다.

이후에도 국회 논의에 진전이 없자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20일 계도기간과 처벌 유예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황 수석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도 일정 부분 계도기간을 뒀는데, 50~299인 기업은 더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그 사이 집권여당 민주당은 노동계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원욱 의원이 지난 8월 초 주52시간제 적용시기를 사업장 규모에 따라 1년 이상 늦추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도 당 지도부는 “당론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시간 단축 후퇴 법안을 낸 건 유감”이라며 철회를 요구하자 이인영 원내대표는 “검토해 보겠다”며 무마했다.

주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지만, 현장에서 문제가 있다면 손봐야 한다. 당장 문 대통령이, 청와대가 보완입법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지 않나. ‘당청 일체’를 강조하더니 이 문제엔 왜 입을 다무나. 진작에 보완입법에 나섰어야 했다. 노동계 비판을 의식해 청와대도 등을 떠밀자 나서는 건 ‘책임 있는’ 여당의 자세가 아니다. 제도 시행 두달 전 거론되는 대책이란 게 정부 조치(계도 기간, 처벌 유예)만인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김경희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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