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내집이 성범죄자 주소? 황당 여가부, 13가구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 6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 A씨는 충격적인 우편을 받았다. 최근 성범죄자가 출소해 동네에 살고 있음을 알리는 여성가족부 고지문이었는데, 성범죄자의 주소지가 자신의 집이었다. 우편은 이미 A씨집뿐 아니라 인근 3000여 세대 아파트와 학교·학원 등에도 뿌려진 후였다.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앱에서도 전 국민이 볼 수 있었다.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사는 A씨는 졸지에 성범죄자로 고지됐다.

전자발찌. [연합뉴스]

전자발찌. [연합뉴스]

A씨는 즉각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했다. 알고 보니 경찰이 해당 성범죄자의 3년 전 구(舊)주소를 기재해 여가부에 알린 탓이었다. 주소 확인을 게을리한 경찰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A씨 등 일가족 4명은 지난 7월 12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여성가족부·부산지방경찰청을 상대로 국가소송(손해배상청구)을 냈다.

경찰, 범죄자 이사 갔는데 몰라 #알림e 홈피 올리고 인근 주민에 발송 #5년간 13건…“경찰 확인 자료 냈다”

A씨 사례처럼 정부가 성범죄자의 주소를 엉뚱하게 기재해 홈페이지와 인근 주민들에게 뿌린 경우가 최근 5년간 13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20일 여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건 ▶2016년 2건 ▶2017년 1건이던 오기는 ▶2018년 5건 ▶2019년(9월까지) 4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중 송사로 이어진 건 A씨가 처음이다.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제도’를 여가부가 운용한 건 2010년부터다. 이전까지는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공개를 피해자만 열람할 수 있는 제한적인 방식이었는데, 홈페이지(성범죄자 알림e)와 앱을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특히 해당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아동ㆍ청소년 보호 세대엔 별도로 우편도 발송한다. 정보공개 범위는 성범죄자의 성명· 나이·사진·주소(실제 거주지)·신체정보(키·몸무게)·성범죄 요지·전자장치 부착 여부 등이다. 현재(20일) 기준 3938명의 정보가 홈페이지에 공개돼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웹사이트 '성범죄자 알림e' 메인화면. [홈페이지 캡처]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웹사이트 '성범죄자 알림e' 메인화면. [홈페이지 캡처]

다른 중대 사범과 비교해도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범위는 유례없이 폭넓다. 그만큼 성범죄자를 바라보는 국민 정서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경찰은 하지만 인력 부족과 성범죄자의 비협조로 인해 자료 수집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하소연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성범죄자 중 ‘신상정보 제출의무’ ‘변경 정보 제출의무’ 위반 등으로 형사 입건된 건수가 최근 5년간 1만3000여건이 넘는다. 여가부 관계자도 A씨 사례와 관련 “경찰로부터 확인받은 내용을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편 고지 역시 매해 60억원 안팎의 예산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효성엔 의견이 나뉜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5월 성범죄자 우편 고지를 받는 응답 기관(273개)을 설문 조사한 보고서를 통해 “우편 고지에 성범죄 예방 및 대처요령이 없어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보 제공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개인들이 전파할 수도 없다. 지난해 가수 고영욱씨가 아동 성범죄 전력으로 신상공개가 결정된 직후 여가부는 “알림e 내용을 공유하거나 지인에 전송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고 공지를 냈다. 실제 알림e 화면을 캡처해 지인에게 보냈다가 실정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사례가 여럿 있었던 탓이다.

전희경 의원은 “공개된 정보인데도 공유조차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민감한 자료를 운용하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먹구구식 운용이었다. 멀쩡한 시민을 성범죄자로 만들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하는 이 제도의 보완은 물론 여가부 운용 방식에 대한 감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