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특효약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

19일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 개혁 집회의 손팻말 중엔 ‘공수처 설치’와 ‘윤석열 수사’가 있었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언급되는 주제다.

공수처의 설치 목적은 검찰 권한의 분산이다.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 설치 법안은 두 가지다. 기구의 줄임말은 같지만 정식 명칭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안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낸 법안엔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명기됐다. ‘범죄’와 ‘부패’라는 차이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사하라는 요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한 때 민주당 내부에선 “수사 내용을 흘린다”는 이유로 수사 검사들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만일 공수처가 설치돼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지난 6월 두 법안에 대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엔 “고소·고발에 의한 수사의 개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백혜련 의원 안 제29조에서 고소·고발인이 수사처 검사로부터 불기소처분을 받은 경우 재정신청(불복)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점에 비추어 허용되는 것으로 보임”이라고 나와 있다.

형법상 공무원 직무의 죄(122~133조)를 폭넓게 수사하도록 한 민주당 안대로라면 조 전 장관 일가 수사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친여 단체나 여당에서 수사 검사를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할 수 있고, 공수처는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만약 법무부 장관을 검찰이 수사하는 가운데 고발장을 접수한 공수처가 검찰총장과 검사를 다시 수사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일부에선 검찰을 정당하게 견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선 수사 방해라고 비판할 것이다. 자칫하면 정치권이 대립하면서 수사기관끼리 서로를 수사하는 대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속단하긴 어렵다.

반면 권 의원 안에선 직권남용이나 뇌물 등 공무원의 부패 범죄를 주된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형법 126조) 혐의는 공수처가 수사할 수 없다. 이처럼 공수처가 어디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검찰이 무소불위라고 비판하지만 현행법으로도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다. 또 인사권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법안에는 공수처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야당에선 공수처를 통해 대통령의 사정기관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여당 안은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수처장을 임명하지만, 권 의원 안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7명)의 야당(교섭단체) 몫이 2명인데 이 중 한 명이 돌아서면 친여 인사가 공수처장이 될 수 있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우려다.

자유한국당에선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다루는 특별감찰관 제도와 상설특검법을 활용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법은 특검 임명 절차를 규정한 것이다. 여당과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의 이런 태도를 비판한다. 한시적으로 공수처장 역할을 하는 특검을 임명해 보면 어떤가. 언젠가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한다면, 정치권에서 적절한 협상안이 나올 수 있다.

함부로 제도를 도입했다가 뒤늦게 보완책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점진적인 개혁이 언뜻 보면 느린 것 같지만 사람들의 이해와 적응도를 높인다. 그래야 후퇴하지 않는 개혁이 완성된다.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