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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를 다 잡아들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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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예비후보였던 2007년 8월. 그는 “공수부대를 동원해 멧돼지를 소탕하자”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자 특전동지회 회원들은 “멧돼지나 잡는 게 대한민국 최정예부대인 특전부대 요원들 임무냐”며 강하게 불만을 터트렸다.

12년 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탓이다. 북한에서 창궐한 ASF가 남쪽으로 전파될 것이란 우려는 일찍부터 있었지만, 이달 초부터 비무장지대(DMZ)와 경기도 연천·파주, 강원도 철원 접경지역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잇따라 검출되면서 멧돼지 포획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2017년 6월 ASF가 발생했지만 9개월 만에 종식해 성공적인 대처 사례로 꼽히는 체코의 경우 폐사체 발견지점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치고 대대적인 포획작업을 벌였다. 감염지역 1033㎢ 내에서 3758마리, 감염지역 바깥에서 2만3906마리를 포획했다.

하지만 멧돼지를 얼마나 잡아야 할까. 유럽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100㏊(1㎢)당 0.1마리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현실적이란 비판도 많다. 적응력 강한 멧돼지를 모두 잡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도 100㏊당 평균 5.6마리, 전국적으로 30만 마리가 넘는 멧돼지가 있다. DMZ와 민통선 지뢰지대까지 있어 포획하기는 훨씬 어렵다. 오발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멧돼지가 도심으로 달아날 수도 있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지난 15~16일 멧돼지 사살 작전을 벌였지만 126마리를 포획하는 데 그쳤다.

북한 멧돼지를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체코처럼 한 번에 ASF를 종식하기도 어렵다. 이번 멧돼지 폐사체 발견지점도 DMZ를 관통하는 임진강·사미천·금성천과 가까운 곳이다. 철책이 완벽하다 해도 하천 물밑으로는 동물이 드나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포획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멧돼지 폐사체의 신속한 수거·처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 멧돼지 폐사체를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