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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방일이 징용 해법 마련의 분수령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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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내일 이낙연 총리가 방일한다. 레이와 시대 나루히토(德仁)일왕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서지만, 관전 포인트는 과연 이 총리가 최악의 상황으로 질주하는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전환할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다. 총리의 외교 행보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풀어내기에 시기적으로 절호의 기회일 뿐 아니라 일본을 잘 아는 이 총리가 지닌 정치적 위상과 역량에 거는 기대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은 징용 배상 포기 선언하고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 필요

지금 한·일 관계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2012년 이래 한·일 관계는 장기적 악화 상태에 놓여 있긴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 이후 급전 낙하를 거듭해 왔다. 징용 판결 결과로 일본 투자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과정이 진행되면서 일본의 반발과 불만은 극도로 고조되었다. 마침내 올 7월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라는 경제보복 처방을 내놓았다. 이에 격분한 한국은 대항 조치로 8월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

국민적 차원에서도 한·일관계가 급냉각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국에서는 불매운동을 비롯한 ‘No 재팬’ 운동이, 일본에서는 반한·혐한 정서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한·일 관계의 갈등 전선은 과거사 문제에서 출발하여 역사·경제·안보·국민감정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상승하고 있다. 냉정하게 양국 국익과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이 상태를 수수방관하거나 더 나아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이용한다면 그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일 관계의 복합적 갈등 상승 작용의 연쇄를 풀어내기 위해서 이 총리가 이번 방일을 계기로 리더십과 지혜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염원한다. 현재 당면한 한·일 관계의 3대 난제는 징용·경제보복·지소미아다. 물론 총리 방일로 당장 세 가지 난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구체적 방도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당면한 한·일 관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다. 사태 해결의 요체는 일본과 협상을 통해 3대 난제를 패키지 딜로 묶어 톱다운 방식으로 일괄해결하는 로드맵을 끌어낼 수 있느냐다.

한·일 갈등의 뇌관은 징용 문제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피해자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창의적 해법의 그림을 마련하느냐가 핵심이다. 해결을 위한 대원칙은 일본의 식민 통치 불법성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죄, 그리고 한국의 물질적 식민 배상 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대원칙에 합의한다면 입법 조치와 관련 기업의 자금 출연을 축으로 피해자 구제의 길이 열리고 경제 보복과 지소미아 문제는 해결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통상 당국 간 협의를 개시하여 전략물자 관리의 투명성 제고를 통해 수출 규제의 상호 철회 방향으로 이끌고 지소미아는 기한 내 원상복귀를 도모할 길이 열릴 수 있다.

3대 현안 해결의 로드맵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면 최종적인 정치적 결단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몫으로 돌아간다. 정상회담은 다가오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장에서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총리 방일과 더불어 11월 초 한·일의원연맹 총회, 문희상 국회의장의 방일 등의 외교 행사는 협상 동력을 정상회담으로 이어가는 순풍이 될 수 있다.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을 축으로 한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이 문재인·아베 정상회담으로 계승 구현된다면 한·일 관계의 대전환과 21세기 새로운 관계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총리의 방일로 이 큰길로 가는 물꼬가 트이길 소망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