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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서 오~래 근무? 앞으론 '긱 워커'가 대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17)

대학에서 강의한 뒤에 한 학생이 상담을 신청했다. 진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대학에서 강의한 뒤에 한 학생이 상담을 신청했다. 진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

상담을 신청한 학생이다. 대학에서 내 강의를 듣고 본인의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취업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못하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주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는 은행에서 정년퇴임 하셨고요. 그래서 더욱 금융권에 취업하기를 희망하십니다. 엄마도 당연히 제가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 일하기를 바라시고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중소기업은 생각도 안 해봤어요. 거기를 어떻게 가요. 부모님 그리고 내 자존심이 허락 안 합니다. 한데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취업을 하려고 하는지, 왜 이 직장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이 학생의 대답을 들으면서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어느 신입 행원이 떠올랐다. 그 어렵고 힘든 바늘구멍 같은 은행고시를 치르고 당당하게 합격한 신입행원이다. 수백 대 일 경쟁을 뚫고 입행했었기에 자부심도 대단했다. 취업대란에서 얻은 합격의 기쁨을 가족은 물론 주윗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 속에 온몸으로 만끽했다.

실력도 큰 만큼 직장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막상 현실에서 다가온 직장생활 일상은 그 기대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고 한다. ‘은행에서 하는 이 일이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이었나?’ 하는 본질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생활 하면서 가고 싶은 직장을 그려볼 때는 늘 좋은 모습만 떠올리게 된다. 그곳에 취직만 되면 내가 얼마나 멋져 보일까 그려본다. 남들이 모두 부러운 눈으로 보는 그 직장은 상상의 멋진 세계이다. 하지만 취직의 기쁨도 잠시 직장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실상은 그 멋진 환상을 처참하게 깨부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여기에 온 것인가?’ 방황과 갈등, 고민이 시작된다.

어느 조사결과에 따르면 입사하자마자 이 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는 신입사원부터 3개월도 되지 않아 입사를 후회한다는 신입사원 비율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일 년도 되지 않아 그만두는 신입사원은 두 명 중에 한명꼴로 50%가 넘는다고 한다.

상담을 신청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취업만을 바라볼 뿐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 pixabay]

상담을 신청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취업만을 바라볼 뿐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 pixabay]

상담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놀랍게도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 왜 은행에 가고 싶은지, 왜 대기업에 가고 싶은지,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대부분 부모님의 기대, 남들의 눈 그리고 본인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부모의 기대, 남들 눈을 떠나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듯이 취업이라는 목표를 정해두고 거기에 매달려 준비해온 것이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오늘 어떤 지원자와의 면접인가요?” 인사부에서 마케팅 경력자 후보 5명을 추천해 주었다. 금융권에서 마케팅최고관리자(CMO)로 재직할 때 일화이다. 내부에서 금융상품 마케팅관리자를 발탁하려 했으나 마케팅이라는 전문적인 기능을 살리고 새로운 다양한 금융마케팅을 위해서 아무래도 마케팅 실무경력이 있는 외부 경력자를 뽑자는 제안을 받아 진행 중이었다.

인사부 주관으로 업무 관련 부서장과 함께 면접이 시작됐다. 한 사람씩 차례로 1시간 정도 진행하는 면접이다. 사전에 이력서를 보니 모두 다양하게 마케팅 경력을 가진 후보자들이다. 면접 내내 다들 한결같이 마케팅 실무와 실질적인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본인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서는 얼마나 열심히 잘 해왔는지를 뽐내고 있었다.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왔다. 첫 문장부터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띠며 말문을 연다. “실은 제가 대학 졸업 후 이 금융기관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케팅분야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무부터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조그만 마케팅전문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왜 그런 이름도 없는 회사에 가느냐고 난리 치셨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하나씩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갔습니다.

최근 2년 전부터는 금융 분야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금융 관련 업무도 익혔습니다. 저는 이런 기회가 꼭 오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마케팅 관리자로 일하게 되면 향후 어떤 금융마케팅을 해야되는지 시장현황, 경쟁사 현황, 마케팅 흐름 변화, 그리고 소비자들의 변화와 맞추어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제는 대규모 공채보다는 그때그때 뽑는 형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역량을 가꾼다면 나의 가치 역시 높아질 것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이제는 대규모 공채보다는 그때그때 뽑는 형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역량을 가꾼다면 나의 가치 역시 높아질 것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이제 대규모 정기·공개채용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다. 많은 기업이 공개채용에서 필요한 인재를 그때그때 바로 뽑아 쓰는 수시·상시채용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대기업들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도 직무 중심의 상시채용으로 바뀌고 있다. 실례로, SK그룹은 내년부터 공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수시·상시채용을 늘린다고 한다. LG·신세계·두산그룹 역시 계열사별 수시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금융권은 이미 수시채용으로도 인재를 뽑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첨단기술시대, 더욱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이다.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는 인재는 사라지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여러 기업의 일을 맡아 하는 긱 워커(gig worker) 인재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향후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기존의 공개채용에서 분야별 인재를 필요한 시기에 확보할 수 있는 맞춤형 채용 기법을 통한 수시채용으로 수렴할 것이다.

당연히 취업 준비도 ‘어느 기업, 어느 금융기관’보다는 ‘어떤 분야’에서 일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더는 ‘어디서 일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시대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전문성, 나의 역량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바로 본인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다. 그 역량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집중하자.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찰해보자. 그리고 나의 역량을 발견하고 키워 나가자. 세월이 지나도 계속 발전하는 나의 핵심역량은 나의 가치를 꾸준히 높여줄 것이다.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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