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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⑨ '여~자가' 꼰대에 욕먹던 광고, 韓 최장 여성브랜드 된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의 장수 브랜드⑨]신세계인터내셔날 톰보이  

‘천만 번을 변해도 나는 나, 이유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톰보이가 1993년 선보였던 광고카피다. 지금 보면 딱히 생소하지 않은 문장일 수 있다. 하지만 1993년에는 달랐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이런 문장은 도발적이었다. 당시 나이가 지긋하고 보수적인 일부 사람은 이 광고 모델을 두고 ‘싸가지(예의·배려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없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당시로서는 도발적인 이미지는 속칭 ‘신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개성을 추구하는 신세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올라섰다.

197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197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43년…국내 최장수 여성 캐주얼브랜드

198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198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여성 캐주얼패션(casual fashion) 브랜드는 대체로 수명이 짧다.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가 많고 트렌드도 빨리 바뀐다. 그래서 장수브랜드는커녕 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199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빠르게 달라지는 여성 캐주얼패션 시장에서 스튜디오톰보이는 국내 최장수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1977년 고(故) 최형로 회장이 ‘톰보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순수 국내 패션 브랜드다. 국내 패션업계서 드물게 43년 역사를 버텨내는데 성공했지만 톰보이가 지금처럼 시장에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던 당시 한국 분위기에서 최형로 회장은 중성적인 여성 이미지를 강조하는 브랜드명(톰보이)을 선택한다. 톰보이는 활발하고 다소 남성성을 갖춘 10대 여성을 일컫는 용어다. 재래시장·양장점이 유행하던 당시 톰보이는 국내 브랜드로는 드물게 청바지·맨투맨티셔츠를 판매하며 화제에 오른다.

창업 당시에는 사람들이 옷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재질이었다. 디자인이나 브랜드에 담긴 의미 등을 떠나 편안한 소재인지 여부가 중요했던 시절. 그런 시절에 최형로 회장은 섬유기업을 하나의 '패션 기업'으로 바꿔놨다. '캐주얼 의류'라는 용어도 톰보이 덕분에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 브랜드 이미지도 빛이 바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중가 패션 브랜드 판매량이 급감한다. 톰보이도 상당한 위기에 부딪혔다.

200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200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 브랜드의 공습 때문이다. 이른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국내 패션 업계를 강타한다. 유니클로·자라·H&M·망고 등이 서울 명동 등 국내 상권은 물론, 국내 주요 쇼핑몰에 등장했다. 이들은 당시 국내 브랜드보다 최대 절반 가량 저렴한 상품을 내세우고, 신상품을 한 달에 두 차례나 선보이면서 국내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톰보이는 가격대를 낮추고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의류 생산 전 과정을 담당하는 일종의 스파(SPA) 브랜드를 벤치마킹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유니클로·자라·H&M과 같은 브랜드로 변신한 것이다. 덕분에 2000년대 초반 국내 주요 백화점 여성 캐주얼패션 매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신세계 인수…패션계의 불사조 브랜드

201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2010년대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두 번째 위기는 2006년 창업주인 최형로 회장이 타개하면서 찾아왔다. 주인을 잃은 톰보이는 재무실적이 악화하자 2009년 인수합병(M&A)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긴다. 하지만 그는 패션사업에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톰보이는 16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2010년 최종 부도 처리됐다.

최종 부도가 나자 톰보이 당시 경기도 소재 물류센터에 사채업자가 몰려들었다. 회수하지 못한 돈 대신 옷이라도 받아가기 위해서였다. 톰보이는 사설 경호업체를 동원해 이들과 대치했다. 재고까지 사라지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실적악화·부도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톰보이가 불사조처럼 되살아난 건 2011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톰보이를 인수하면서다. 당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톰보이의 지분 97.1%를 인수하고 브랜드 재건 작업을 시작한다.

2012년 2월 초 AK플라자 수원점에 매장을 열면서 백화점 영업을 재개했고, 디자인·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2012년 론칭 당시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2012년 론칭 당시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일단 당장 유행하는 디자인에 집중하기보다, 톰보이만의 차별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중성적이고 소년스러운 느낌을 벗어나, 세련되면서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여성 패션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톰보이는 수입 여성 캐주얼패션 의류와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또 스파 브랜드와 경쟁이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도 톰보이의 부활 요인 중 하나다. 2012년 브랜드 재시작 당시 톰보이는 ‘클린 스마트 프라이스(clean smart price)’를 선언한다. 제품 가격을 책정 단계부터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고객·생산자 모두에게 이익을 되돌려주자는 취지에서다. 덕분에 영캐주얼(young casual) 브랜드 대비 20% 저렴하게 판매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12년 당시 톰보이는 트렌치코트를 20만원대, 바지를 10만원대, 티셔츠를 3만9000원~6만9000원대, 블라우스를 10만원 대에 판매했다.

디자인 차별화로 중국 시장 공략  

스튜디오톰보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 외관.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스튜디오톰보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 외관.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6년 하반기 톰보이를 ‘스튜디오톰보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한다. 톰보이의 브랜드 역사는 유지하면서, 로고·콘셉트·제품·매장인테리어까지 재정비했다.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톰보이가 단 한 가지 콘셉트로 제품을 선보였다면, 스튜디오톰보이는 다양한 소비자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디자인·가격대에 따라 5가지 라인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아틀리에라인(최상위 제품군·타임리스 컨템포러리 라인) ▶스튜디오 라인(기존 톰보이의 인기 디자인을 계승한 라인) ▶에센셜 라인(라운지의류라인) ▶액세서리 라인(가방·보석·액세서리 등) ▶키즈 라인(어린이 의류) 등이다.

2016년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한 스튜디오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2016년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한 스튜디오 톰보이.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또 스튜디오톰보이의 매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국내·외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고 있다. 미국의 삽화가 이안 스크라스키’와 협업한 의류가 인기를 끌었고, 미국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리차드 하인즈가 그린 코트 화보를 주요 매장에 전시하기도 했다. 판화작가 김타코와 협업하거나 주요 매장에서 목판화·그림을 전시하면서 다른 여성 캐주얼 브랜드와 차별화한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했다.

덕분에 지난해 스튜디오톰보이 매출액은 1125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톰보이를 인수한 직후 매출규모(394억원)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이 팔리는 셈이다. 2020년까지 매출액을 20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스튜디오톰보이가 올해 가을겨울용 상품으로 선보인 시즌 제품.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스튜디오톰보이가 올해 가을겨울용 상품으로 선보인 시즌 제품.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국내 시장에서 영역을 넓힌 스튜디오톰보이는 이제 글로벌 브랜드로 변신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스튜디오톰보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서 4월 중국 베이징·서안에 위치한 SKP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각각 개점했다. SKP백화점은 중국 고급 백화점이다. 스튜디오톰보이는 이후에도 점진적으로 중국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 여성 캐주얼 패션의 역사가 담긴 스튜디오톰보이를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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