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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물 日프로레슬링이 보물로···美경기도 완판시킨 '日히딩크'

중앙일보

입력

'100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인재'로 평가 받는 레슬러 다나하시 히로시(42)는 여성 팬인 '푸죠시'를 몰고 다닌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100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인재'로 평가 받는 레슬러 다나하시 히로시(42)는 여성 팬인 '푸죠시'를 몰고 다닌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한물간 퇴물 쇼’로 취급받던 일본 프로레슬링이 글로벌과 디지털로 무장해 완전히 부활했다. 남성보다 더 열광적으로 즐기는 ‘푸죠시(プ女子·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여성)’란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팬층도 다양해졌다.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를 받는 충성파 중 절반은 외국인이다. 게임은 물론 캐릭터 상품도 불티나게 팔린다. 최근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프로레슬링 경영학’이란 화두를 던지며 부활한 일본 프로레슬링을 집중 조명했다.

글로벌 경영 ‘일본판 히딩크’ 등판  

일본 프로레슬링의 신 전성기를 이끄는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의 해럴드 조지 메이다.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지난 7월 결산에서 역대 최고 매출인 54억엔(약 600억원)을 기록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CEO인 해럴드 조지 메이.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신일본 프로레슬링 CEO인 해럴드 조지 메이.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메이는 일본코카콜라 부사장 시절 ‘코카콜라 제로’를 히트시키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4년엔 경영악화에 시달리던 완구업체 다카라토미 사장에 올랐다. 창업 이후 90년간 가문 경영을 하던 이 회사가 처음 기용한 외부인이었다. 그가 취임한 것만으로도 주가가 10% 이상 오르는 등 ‘메이 쇼크’라 불릴 정도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가 퇴임한 2017년 다카라토미의 영업이익은 8년 만의 최고 수준(131억 엔)을 기록했다.

그런 만큼 메이의 향후 행보는 일본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메이는 퇴임 직후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3두마차 중 선두인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연매출이 다카라토미의 40분의 1에 불과했지만 메이는 CEO 지위를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이 프로레슬링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년을 보낸 메이는 일본어를 몰라 또래에 잘 끼질 못했다. 그러다가 당시 황금기였던 프로레슬링 TV 중계에 심취했다. 자신과 같은 서양인 레슬러가 일본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한마디로 "프로레슬링에 구원받은" 셈이었다. 과감한 이직 결정에는 푸죠시인 일본인 아내의 적극적인 후원도 한몫했다.

콘텐츠기업 손 거치며 분위기 반전  

메이가 CEO에 취임하기 전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콘텐츠기업 2곳의 손을 거치며 진화하고 있었다. 역도산의 애제자인 안토니오 이노키가 1972년 창설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98년 39억 엔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프라이드(PRIDE)나 K-1 같은 이종격투기 붐에 밀려나 급속히 쇠락했다. 경기장 티켓 판매 이외에는 별다른 수익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5년 콘솔게임 개발업체인 유쿠스(Yuke’s)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했다. 유쿠스는 ‘투혼열전’과 같은 프로레슬링 관련 시리즈 게임을 내놓았고, 엉망이던 재무 구조도 건전화시켰다.

201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한 부시로드는 레슬러를 인형화한 캐릭터 상품 개발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힘쓰고 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201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한 부시로드는 레슬러를 인형화한 캐릭터 상품 개발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힘쓰고 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2012년엔 트레이딩 카드게임 업체인 부시로드(BUSHROAD)가 나섰다. 부시로드는 레슬러들을 귀여운 캐릭터 인형으로 바꾸는 등 상품화를 주도하며 신규 수익원 발굴에 많은 기여를 했다. 도쿄 중심지를 순환하는 전철 노선인 야마노테선의 전 차량을 소속 레슬러 사진으로 랩핑하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도 펼쳤다. 또 TV 예능프로그램에 선수들을 자주 노출시키며 인지도를 올리고, 가족 단위 관객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경기장 조성에도 힘썼다. 그 결과 2018년 매출은 인수 이후 6년 새 5배 이상 뛰었다.

“레슬링은 단순명쾌한 세계공용어”

메이는 다시 인기가 불붙기 시작한 프로레슬링 시장에서 ‘스포츠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글로벌 전략에 방점을 두고 있다. 메이는 닛케이에 “일본에서 인기인 야구도 세계적으로 보면 흥행국이 10개국 정도에 불과하고, 축구도 세계의 절반에서만 인기가 있다”며 “그에 비해 레슬링이나 격투기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룰도 단순 명쾌해 세계 공용어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축은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IP) 전략이다. 이는 아메바TV 등 OTT 망을 이용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방영권 판매 수익, 라이선스 요금 등을 아우른다. 유럽의 클럽축구는 이런 IP 관련 수익이 전체 수익의 60~70%를 차지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경우 아직 20% 미만에 그쳐 확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뉴욕경기 1만6000석 16분만에 완판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 사정도 감안했다. 메이의 지휘 아래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해외 매니어들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에서 직접 경기를 펼치는 등 각종 이벤트를 전개하고 있다. 6월 호주, 8월 런던을 거쳐 지난달 말엔 미국 동부해안 주요 3개 도시를 도는 경기대회를 열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 4월엔 ‘프로레슬링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1만6000석 표가 16분 만에 동날 정도로 높은 인기를 확인시켰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해외 팬층을 확대하기 위해 주요 경기 동영상에 영어 자막을 입히고 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해외 팬층을 확대하기 위해 주요 경기 동영상에 영어 자막을 입히고 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 캡처]

매달 999엔(약 1만1000원)을 내고 동영상을 보는 유료회원은 1년 새 60%나 늘어 10만명이 됐다. 그중 절반이 미국 등 해외 거주자일 정도로 글로벌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최근엔 더 많은 충성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기에 영어자막을 입히는 요원을 더 늘렸다.

캐릭터와 스토리성이 가미된 일본 프로레슬링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처럼 세계 무대를 휘어잡는 일본식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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